거의 멈춰있다시피 하던 우리 가족의 이민 시계는 7월 말부터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 이민국에서 노동허가서를 승인하자마자 서류 작업을 시작해서 두 종류의 서류 (I-140, I-485)를 3주 만에 접수시켰고, 지난주에는 이민국 지역 사무소 (Application Service Center)에 온 가족이 방문하여 지문을 찍고 오기도 했다. 보통 짧아도 5~6개월은 걸리는 영주권 신청의 주요 과정들이 불과 두 달 반 만에 휙 지나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는 기간을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하지만, 최소한 더 이상 비자 문제로 영구 귀국할 걱정은 없어졌다는 점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다만 세상 일이 늘 그렇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영주권 신분변경 서류 (I-485)를 접수한 사람은 미 이민국이 발급한 여행허가서 (advanced parole) 없이는 출국이 불가능하며, 만약 무단으로 출국 시 영주권 절차 전체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된다. 과거에는 I-485 접수 후 대부분 1~2달 안에 여행허가서를 받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지만, 팬데믹 이후 모든 이민 절차가 크게 지연되고 있기에 최근엔 6개월에서 1년까지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요새는 여행허가서보다 영주권이 먼저 오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영주권 발급 전에 출국하기 위한 서류가 여행허가서임을 생각해보면 이 상황이 얼마나 웃기는 짬뽕인지 짐작이 가시리라.
쉽게 얘기하자면 I-485를 접수한 그 순간부터 나는 최소 몇 개월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에서 나갈수 없게 되었다. 설령 부모나 친지의 상을 당하더라도 말이다.
지난 일주일 간 두 번의 가족행사가 있었다. 동생의 결혼 그리고 아버지의 칠순.
올해 초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한 동생의 혼담은 늦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당장 한두 달 후에 귀국할지 미국에 남아 있을지조차 모를 정도였기에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해"라고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8월 중하순에 I-485를 접수하게 되면서 10월 초로 잡힌 동생의 결혼식 참석은 불가능해졌다. 동생은 "상황이 그런데 어떡하냐, 괜찮아"라며 넘어갔지만 정작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어땠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결혼식 전 화상통화로 동생 부부와 통화하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지금의 상황 설명과 결혼 불참에 대한 미안함 뿐이었고. 행사 후 카카오톡으로 전달받은 결혼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잘 끝났음에 대한 안도감과 불참으로 인한 아쉬움이 섞여 마음이 꽤나 복잡했다.
어제는 아버지의 칠순이었다. 동생 부부는 현수막과 각종 장식품을 챙겨서 집을 장식했고, 많은 친척들이 모여 생신을 축하하고 함께 식사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평소에도 워낙 쿨한 분이라 통화할 때도 역시나 "뭐 이런 걸 신경 쓰고 그러냐? 그럴 거 없다"라고 했지만 그래도 입가에 머금은 잔잔한 미소를 보며 아버지의 오늘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환한 웃음에 내 가슴 한쪽은 또 먹먹해졌고. 애써 활기차게 "이미 표 다 끊어놓은 거 기억하시죠? 내년 봄에 칠순 기념 미국 여행 제대로 시켜드릴게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아무리 좋은 여행을 시켜드린들 어찌 옆에서 자주 찾아뵙는 것에 비하랴?
없어져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가족과 공기는 많이 닮았다.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의무감이 절반 이상인 가족 행사를 치렀겠지. 이역만리에서 혼자 삶을 헤쳐나가는 지금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필요하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축하하고 축하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