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회사 동료가 입국심사장에서 내뱉었다는 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트럼프 정권은 이민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기에 시민권/영주권의 신청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입국 심사를 강화하여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영주권자인 회사 동료가 입국할 때 심사관이 "What is your purpose of visit (방문의 목적이 뭡니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졌으리라.
법적으로 미국에서 살 권리가 보장된 영주권자에게 '왜 우리나라에 왔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의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하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I live here"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그가 몹시나 부러웠는데, 왜냐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미국에서 '산다 (live)'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MBA를 할 때의 미국은 학위가 끝나면 떠날 잠시 머무는(stay) 곳이었다. 취업을 한 뒤 버지니아로 옮기고 난 뒤에 H1B (취업 비자)가 떨어지고 영주권 절차도 험난하게 흘러가면서, 미국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withstand) 절벽 끄트머리였다.
3월 초 미 이민국 (USCIS)에서 영주권 인터뷰를 보았다. 금요일 맨 마지막 타임이라 그런지 심사관은 곧 다가올 주말의 기쁨에 여유로운 분위기였고, 생각보다 꼼꼼하게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다행히 좋은 분위기 속에 별문제 없이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가 던진 한 마디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주변에서 인터뷰 당일 혹은 1~2일 내에 승인된 사례를 꽤 본 터라 '이게 뭔 소리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몇 주간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는 이민국 홈페이지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한 달 정도면 소식이 온다는 선배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이민은 모든 것이 케바케라는 걸 그동안 충분히 경험해 왔기에 솔직히 불안감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지난주 이민국의 'Case status' 페이지에서 내 접수번호를 조회해서 "New card is being produced"라는 문구가 뜬 것을 확인한 순간 두 팔을 치켜들고 고함을 질렀다. 드디어 끝났구나. 드디어 됐구나.
어제 오후 우편함으로 배달된 영주권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다시는 귀국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기쁨,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과 조력자들에 대한 감사, '이 카드 한 장이 뭐라고 지난 몇 년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몸과 마음을 상해야 했나'하는 분노, '이제 발 뻗고 푹 잘 수 있겠구나'하는 안도감...
앞으로도 다양한 인생의 굴곡이 있겠지만, 부디 이 길보다 더 험난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