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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Mar 11. 2022

나를 부끄럽게 한 집주인

2017년 미국에 와서 MBA를 하면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었다. 백인들은 실력보다는 말이 앞선다거나, 똑같은 외모라도 중국인과 대만인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거나, 일본인들은 다들 예의 바르고 공손하다거나 등등. 특히 인도인들의 경우 바쁘다는 핑계로 팀 프로젝트에 잘 참여하지 않거나 자기 것을 과하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많았고, 자연스레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버지니아에서 구한 아파트의 주인도 인도인이었다. 인도인에 대한 이미지를 떠나서 깐깐하게 계약서 조항을 훑으며 굳이 덧붙이던 "나는 당신을 잘 모르니까"라는 코멘트만 들어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랬기에 첫 1년이 지나서 계약을 갱신할 때 '렌트 금액이 얼마나 올라가려나...' 걱정이 앞섰으리라. 하지만 그 당시의 내 사정을 - 비자 추첨은 떨어지고 신분 유지용 학교에 다니느라 돈이 모자라던 - 들은 그는 렌트를 올리기는커녕 소폭 내려서 받겠다고 했다. 지나친 인상 때문에 집주인과 갈등을 겪은 이야기야 많이 들었어도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렌트를 깎아준다니? 그때부터 그에 대한 고마움에 집에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도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단 가급적 내가 고치려고 했다.







최근 내 집을 구매하게 되면서 아파트 주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야 했다. 우리 계약은 6월 말까지였기에 거의 4개월이나 남은 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해야 했던 것이다. 하다 못해 사람들이 활발히 이사하는 봄이나 여름이면 괜찮았을 텐데, 그 당시는 새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이었기에 부탁하면서도 '안 들어주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나를 축하하면서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말고 너 편하게 움직여"라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너 보증금 냈던게 얼마였지?"


이사, 짐 정리, 각종 단장과 수리로 바쁘던 중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렌트 계약을 맺을 경우 최소한 한 달 렌트만큼의 보증금을 별도로 집주인에게 지불하며, 세입자와의 계약이 종료될 경우 집주인은 렌트 기간 동안 발생한 집의 손상 (i.e. 못 자국, 페인트 떨어짐, 카펫 손상 등등)에 대한 수리를 진행하고 비용을 공제하고 나서 보증금을 돌려주게 된다. 아들 녀석이 가지고 노는 끈적거리는 퍼티가 카펫에 워낙 많이 묻어 있었기에 사실 보증금 환불은 고사하고 추가 비용을 내야 하지 않나 내심 걱정하던 터라 사실 그의 연락이 꼭 반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쿨하게 보증금 전액을 내 계좌로 보내고 나서 아래와 같이 문자를 보냈다.


"그냥 알려주는 건데, 페인트나 카펫, 각종 손상된 부분을 고치면서 자재랑 인건비 합치면 4500불쯤 들었어. 하지만 너한테 청구하지는 않을 거야.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해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기도 하고, 너는 정말 좋은 세입자였으니까. 너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길 바라!"

돈을 다 받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 부끄러움이 더 빠르게 밀려왔다. 인종에 기인한 편견을 가졌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해주었던 집주인이 마지막이라고 큰돈을 청구하지 않을지 의심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 기독교인 입네 하면서 정작 비신자로부터 용서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에 대해 배우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해 선한 영향력을 퍼트려야겠다고 다짐한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서 받은 큰 호의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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