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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May 25. 2022

곤혹스러운 "너 냄새나"

소통의 시작, 그리고 교정

자폐 아동을 다른 동년배들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꼽으라면 눈 맞춤의 부재, 어눌한 언어 등과 더불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타인과 눈을 마주하고 웃음 짓는 비자폐인들과 달리, 많은 자폐 아동들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른 사람이 손을 내밀고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자기 할 일만 하거나 아예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도망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친해지고 싶어 말을 붙이던 친구도 점차 '저 아이는 뭔가 다르다,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받고 자연스레 자폐 아동과 거리를 두기 마련이다.


아들 태민이는 천성이 밝고 늘 웃는 얼굴이라 학교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는다. 그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고 같이 어울리면 참 좋으련만, 이 녀석은 도통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시도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거나 친구가 손을 잡아끌어도 열이면 일곱여덟은 씩 웃으며 도망가버릴 뿐. 그렇기에 언제나 우리 아이의 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장애 아동의 교육 목표 설정 회의)에서는 아이의 사회화 훈련이 주요 목표 중 하나이다. 오늘 아침 IEP 회의에서 결정된 아이의 2022-23년도 사회화 목표는 '선생님의 보조 하에서 타인에게 요청하기 (혹은 타인의 요청에 반응하기), 3회 시도 중 2회 성공'. 언뜻 쉬워 보이겠지만 올해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우리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큰 성취일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아예 타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태민이가 근래 들어 조금씩 또래 친구들과 소통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려 노는 건 아니지만, 학급 친구들이 인사를 하면 자기도 인사를 하거나, 놀이를 할 때 자기 차례를 기다리거나 (turn-taking), 심지어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가서 말을 건네기도 한다고 한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부부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선생님의 오묘한 표정과 그에 따른 설명을 듣고 우리의 표정 또한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너 냄새나" 였으니까...


실은 이전부터 이상한 낌새는 있었다.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 주로 하는 말이 "스맬러니" 라는 영문 모를 단어였는데,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를 쓰는 아이의 특성상 몇몇 단어들은 부모인 우리조차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 표현 또한 정체 모를 한국어와 영어의 혼종이겠거니 했었다. 하지만 선생님에 따르면 태민이가 관심을 표현하는 옆반의 여자 아이 이름이 Lenny라는 것이다! 이를 듣고 곧바로 아이에게 "Lenny한테 냄새난다고 말하는 거니?"라고 물어보았고 아이는 신나게 웃으며 "YES!"라고 대답했다. 아이고 머리야....


이해할 수는 있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애 관심 끌려고 지분거리거나 괴롭히기도 하니까. 하지만 태민이의 표현 방식은 (본인의 의도야 어떻든) 상대 아이나 부모에게 큰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에 즉각 학교 선생님과 테라피스트들에게 문제를 알렸고, 집에서도 아이가 "SmellLenny"를 이야기할 때마다 "태민아, 그건 나쁜 말이야. I like Lenny"라고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교정을 시도한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아들은 여전히 신날 때면 "SmellLenny!"를 외치고 나서 눈치를 보며 "나쁜 말이야, I like Lenny"를 덧붙인다. 한숨이 나오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도 녀석이 나름 노력한 결과라는 걸 아는데.


동년배 아이들과 아들을 보면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 해도 비교하게 되고, '언제쯤이면 저렇게 되려나?' 조급한 마음이 든다. 그럴 때 '선천적인 어려움을 타고 난 아들이 얼마나 노력했기에 이만큼 성장했는지' 되새기다 보면 절로 상한 마음이 가라앉곤 한다. 나도 아이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때를 돌아보며 웃음 지을 날도 오겠지. 그날을 위해 오늘도 험한 길 위로 한 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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