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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un 17. 2022

자폐 아들과의 핑퐁 대화

혹시 본인이 타인과 대화할 수 있어서 감격하시는 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히 말을 배우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라가는게 보통이니까. 빠르면 돌 즈음, 느려도 만 3-4세 정도부터는 의미 있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고, 궁금한 것을 물으며, 원하는 것을 부모나 친구에게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위 문단을 읽으며 고개를 젓거나 갸우뚱하셨다면 아마도 가족이나 주변 친지 중에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만 해도 아들 태민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말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개념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훈련이나 교육 없이 자연스레 말을 시작하고 눈을 마주치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까.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문장으로 말하기, 물어보는 것에 대답하기, 눈 마주침, turn taking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늘 고민해야 했다. 그래도 약 10년간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요즘은 짧은 단어와 문장으로나마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있는데 - 우리는 이걸 탁구에 비유해서 '핑퐁 대화'라고 부른다 - , 그 때마다 아이의 발달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다.






길고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학기 중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조용한 집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이번 월요일부터는 공부하기 싫다고 땡깡을 부리는 아이 목소리와 고함을 지르며 혼내는 아내 목소리가 헤드폰을 뚫고 들려온다. 긴 방학을 이용해 뒤쳐진 수업 진도를 따라잡으려는 엄마와 공부하기 싫은 아들의 마음이 모두 이해되다 보니, 옆방에서 푸닥거리를 할 때마다 그저 한숨을 쉬며 헤드폰의 볼륨을 올릴 수밖에......







공부 한타임이 끝나고 아내가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가르친 후라 지치고 짜증난 표정일 줄 알았는데, 빙글빙글 웃는 표정으로 나눠주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았다.


아내: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태민: 그만해.

아내: 야, 네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고 미리미리 하면 내가 왜 잔소리를 하겠냐?

태민: 그래 알았어.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너무나 자주 당연하게 주고받을 이런 대화들. 하지만 우리 가정에서는 이런 상황 자체가 즐거운 뉴스가 된다. 아직은 질문에 맞지 않는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할 때가 많지만, 언젠가는 태민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오늘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재잘 재잘 늘어놓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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