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Dec 22. 2022

Code Name: Merry Christmas!

연말이다. 겨우 열흘 지나면 2023년이라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저녁 대여섯 시만 되면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에 '이제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동네에는 장식에 진심인 집들이 워낙 많아 실물 크기 산타클로스 혹은 호두까기 인형 정도는 되어야 눈길을 끌 수 있을 정도다. 덕분에 동네를 산책하며 갖가지 장식들을 보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긴 했는데, 예수님에 관련된 장식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 산타클로스, 루돌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은 기독교 신자로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아기 예수는 어디로 간 걸까?


우리 집 앞 베들레헴 마구간. 한국이었으면 꽤나 눈에 띄었겠지만 여기서는 그저 소박(?)할 뿐이다






산타 클로스와 루돌프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된 것보다 더 아이러니한 일은 미국은 이제 "Merry Christmas"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는 점이다. 이미 상당수의 정부, 공공기관, 사기업에서는 '특정 종교의 색이 드러나는' Merry Christmas 대신 "Happy Holidays"라는 연말 인사를 사용하고 있고 백악관에서 보내는 연하장에서 "Happy Holidays"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도 5년이 넘었다.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의 영향으로 특정 계층 및 그룹을 우대하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사회 전체적으로 팽배해 있고, 유대인들이 기념하는 큰 행사인 봉헌 축제 (Hanukkah)가 크리스마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이기에 그들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인지 식당에서 "Merry Christmas"라고 인사를 한 서버에게 항의하는 사람을 보았다는, 그래서 본인이 식당을 떠날 때 큰 목소리로 그 서버에게 "Merry Christmas!"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는 목사님의 지난주 설교는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2016년에 백악관에서 보낸 연하장



이런 상황을 몰랐던 이민 초기에는 연말이면 당연스럽게 "Merry Christmas"라고 인사를 건넸다. 보수적인 Texas라 변화가 느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남부 사람 특유의 호의 (southern hospitality) 탓인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으며 같은 인사말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미국을 조금씩 알아 가면서, 친하지 않거나 상대의 종교를 알지 못하는 경우 인사를 건네려다가도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특히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를 무시하거나 "Thanks. Happy Holidays!"라고 받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하고는 더더욱. 나에게는 그냥 인사일 뿐이지만, 상대방이 이를 통해 내 종교와 정치적 성향까지 판단 내려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치 비밀 미션의 스파이들끼리의 암호를 교환하는 느낌까지 나는 것이다. 


'너 기독교인이니? 아니, 최소한 그렇게 (?) 민감한 사람 아니지?' 


이 상황이 농담이나 과장이라 생각하는 분도 분명 있으시겠지만, 내가 이런 것에 상당히 둔감한 사람이라는 건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최근 자동차 구입을 위해 받은 Auto loan 관련하여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로 문의할 일이 있었다. 아주 친절하고 싹싹한 - 미국 Customer Service Representative에게서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 여성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주었기에 용건은 금방 끝났다. 보통은 "Thank you. Have a nice day!"로 전화를 마무리하지만 오늘은 거기에 굳이 "Merry Christmas!"를 붙였다. 


"Oh my god. Yes. Thank you and Merry Christmas too!"

그리고 잠시 이어지던 두 공모자(?)의 밝은 웃음. 


그래, 우리가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그저 연말과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려는 것 뿐이다. 사회가 변하는 건 개인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은 지켜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판작가(될 뻔했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