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과 추석 같은 큰 명절이 되면 기분이 늘 미묘해진다. 어릴 때야 용돈도 받고 친척들과 신나게 노니 명절만큼 기다려지는 때가 없었는데, 지금은 뭔가 미션(?)을 달성해야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기에 당연히 휴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절만 되면 마치 한국에서 명절을 맞은 것처럼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하고 친구들과도 카카오톡을 통해 덕담을 나눈다. 이러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살짝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또한 용돈을 보내드리면서 점차 줄어들어가는 한국 통장의 잔고는 이제는 받은 걸 갚아 드려야 되는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즐거워야 하는 설날에 기분이 나빠질 때가 있는데, 대부분 음력설을 "Chinese New Year"라고 칭하는 문구를 인터넷에서 볼 때다. 2017년부터 지냈던 Texas는 아시아인의 비중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음력설만 되면 꼭 Chinese Student Association에서 "Chinese New Year"를 축하한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음력설을 기념하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데 자국의 이름을 명절에까지 붙이려 하는지... 그래서인지 꼭 이맘때에 그룹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메일 말미에 "Happy LUNAR new year!"를 붙이곤 했다. 제삼자가 보기엔 토마토나 토메이토나 똑같은 건데 뭐 저걸로 문제 삼나 싶겠지만, 설은 중국만 기념하는 명절이 아니니까.
지금 내가 사는 Virginia의 Fairfax는 아시아인 비중이 상당히 높은 곳이다. 당연히 인도인과 중국인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며칠 전 아이의 세러피 센터에 가서 로비에 앉아 있는데, 어린아이 (아마도 중국인인)가 들어오면서 "Happy Chinese New Year!"라고 크게 외치는 것 아닌가? 그냥 웃어주면 그만이었을 텐데, 듣는 순간 절로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중국인도 아닌 오너가 로비에 빨간색과 금색으로 중국식의 데코레이션을 한 것을 본 순간부터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다.
애초에 그냥 Lunar New Year를 각자 즐기면 될 것을 왜 자기 나라 이름을 붙여서 논란거리를 만드는지.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 Political Correctedness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여기 살다 보면 좋든 싫든 이 꼴을 매년 봐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속이 깝깝해진다. 그냥 앞으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돌려줘 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