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Sep 10. 2022

몇 년 늦게 찾아온 육아의 즐거움

아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건 부모의 기쁨이자 특권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에게 육아는 기쁨보다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데, 특히 우리처럼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경우 '도대체 육아가 뭐가 기쁘다는 건가'하는 생각에 이어 곧바로 따라오는 죄책감 + 자괴감 콤비네이션에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많다. 특히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울음과 생떼를 어마 무시하게 부리던 만 4세 이전이 제일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변 아이들은 벌써 재잘재잘 떠들고 부모에게 애교도 부리는데 우리 아들은 말도 거의 없고 혼자서만 놀다가 심사가 틀어지면 생떼가 시작되니 육아가 행복하려야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만 5-6세 전후로 아이의 언어가 어느 정도 트이고 상호작용이 개선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좋아졌고, 언제부턴가 와이프의 입에서 '이게 아이 키우는 행복이구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선물하기 위해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Episode 1>

"엄마 예뻐, 고마워 사랑해"


요새 집에서도, 밖에서도 태민이는 자주 엄마를 꼬옥 안으며 애교를 부린다. 아빠한테는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속이 찌르르 울리면서 아이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Episode 2>

1-2년 전만 해도 태민이는 공부할 때, 양치시킬 때, 운동시킬 때 잘 따라오는 착한 어린이였다. 집중이 오래 못 가서 그렇지. 요샌 한 두 살 더 먹었다고 실실 웃으며 침대나 바닥에서 뒤 굴거리거나 도망을 다니는데, 그때마다 와이프의 목소리는 한 단계씩 올라가다 결국 임계점을 넘어 빽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나마 초반엔 깜짝 놀라서 얼른 돌아왔는데, 요새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슬슬 말대꾸를 한다. 이걸 혼낼지 말지 결정하기 힘든 애매한 크기로.


“I can hear”

“You hurt my ears!” 



Episode 3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


이 녀석에게도 눈치라는 게 생기긴 하나 보다. 1년 전만 해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아빠!"라고 외치던 태민이가 요새는 대답 전 살짝 망설이거나 아예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아마도 저 날은 엄마가 태민이와 잘 놀아준 날이었던 모양인데, 그날의 기분과 있었던 일에 따라 답이 엄마일 때도 있고 아빠일 때도 있다. '오늘은 엄마가 더 좋은데 아빠가 이걸 물어보네? 에이, 못 들은 척 해야지'라는 표정을 애써 관리하는 녀석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벌써 한국 나이로 10살, 만으로는 9살이라 일반적인 가정은 아이의 학원이나 대입 플랜을 고민하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런 조그마한 발전도 충분한 기쁨과 보상이 된다.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으니 부디 한발 한발 튼실히 디뎌내며 앞으로 나가주길.



이전 09화 (자폐)아이는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