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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Aug 24. 2022

(자폐)아이는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

아들 태민이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공항까지 타고 가는 택시, 비행기 탑승, 새로운 호텔 등 모든 경험을 즐거워 하기에 예산 제약이 심한 학생 시절에도 어떻게든 시간과 돈을 짜내서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3-4시에 곤하게 자고 있는 녀석을 깨우는 방법은 흔드는 것도, 안아 드는 것도 아닌 "태민아 비행기 타자" 한 마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여행" 중얼거리며 일어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우면서도 신기한지.


최근 들어 아이에게 날짜와 시간관념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 여행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가르치려고 노력 중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 방에 붙어 있는 미국 지도에 여행 목적지와 날짜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태민아, 우리는 8월 17일에 플로리다에 있는 Destin에 놀러 갈 거야"라고 말하면서 포스트잇에 붙어 있는 정보를 읽게 하는 식이다. 물론 태민이는 아직 미국 지리에 익숙하지도 않고 "xx일 후에 여행 간다"라는 컨셉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에 "플로리다 며칠 있다 가지?", "우리 다음에는 여행 어디로 가지?" 같은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은 정확하게 답을 하기에 '이러다가 언젠가는 배우겠거니' 하면서 같은 질문들을 며칠에 한 번씩 아이에게 던진다. 

  


플로리다로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와이프가 싱글거리는 얼굴로 무언가를 내게 가져왔다. 자세히 보니 내가 지도에 붙여 놓았던 "8/17, Flight to Destin, FL" 포스트잇이다. 이게 뭐? 라는 얼굴로 와이프를 쳐다보니, 아이가 자기 전에 포스트잇을 지도에서 떼어 "여행 다음에"라고 말하며 엄마에게 주었다는 게 아닌가? 세상에. '내가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도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이 내가 다녀온 여행을 표시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나올 수 있는 행동이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자폐인에게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해봐도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웠는데, 어느샌가 아이의 사고가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래. 역시 아이는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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