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 앞에선 국물도 없다
간만의 외식. 엄마가 들고 온 봉투를 내려놓자마자 "치킨!"을 외치며 태민이가 달려온다. 소고기 브리스켓 BBQ, 프라이드치킨, 옥수수 2개, 머핀, 샐러드... 한국 돈으로 3만 원이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양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꽤나 훌륭한 구성이다. 엄마와 아빠가 음식을 풀어놓고 접시와 포크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옥수수 머핀을 뜯어먹기 시작한다.
태민이는 아빠를 닮아서 ( 말 안 들으면 당연히 엄마 아들) 먹던 음식을 나눠 달라고 하면 대부분 인심 좋게 나눠 준다. 오늘은 고기보다 머핀을 먼저 조심조심 손끝으로 뜯어서 아껴 먹고 있는데, 왜 이럴 때면 꼭 한 번씩 테스트를 해 보고 싶어지는 걸까?
... 살짝 정적이 흐른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태민이는 다시 머핀의 표면에서 큰 조각을 뜯더니 내 얼굴 앞으로 불쑥 내민다. 옛다. 먹어라!
사랑이 담긴 (?) 머핀 한 입을 먹고 나서 나와 와이프는 폭소를 터트렸다. 평소라면 인심 좋게 과일이고 아이스크림이고 잘만 나눠주던 녀석이 '머핀 통째로 줬다가 다 먹어버리면 어쩌나'하는 고민에 나름 머리를 써서 짜낸 솔루션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이렇게 야무지게 머리를 굴리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요새 내가 이 먼 미국 땅에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런 행복한 순간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