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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Feb 08. 2022

기대치 않았던 "Are you OK?"

아이는 자기 밖으로 또 한걸음을 내디딘다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화가 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부모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를 첫손가락에 꼽고 싶다. 물론 '말을 잘 들으면 애가 아니다'라는 조언도 있지만, 내가 뭐라고 하건 말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절로 이마에 핏줄이 선다. 그러다가 어느 선을 넘어가서 엄마한테 혼나다 보면 불쌍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며 도움을 요청하는데, '말할 때 좀 듣지' 싶다가도 풀 죽은 모습이 안쓰러워 달래 줄 때가 많다. 


자폐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부는 아이를 혼내는 것도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자폐아동들이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만 (이 때는 혼내면 된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혹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본능적으로 배우는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을 익히는 것이 어렵다 보니 대다수의 자폐 아동들은 언어, 지능 발달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이는 일상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도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식탁에 놓은 컵을 가리키며 "이 컵 싱크대에 가져다 놔"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치자. 아이는 컵이 뭔지, 싱크대가 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가져다 놓는 것이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비자폐아동은 "엄마, 싱크대가 뭐야?"라고 물어보거나 "하기 싫어요"라고 답할 수라도 있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아이는 이마저도 어렵다. 또한 자폐 아동들은 시각, 청각, 촉각 등 각종 자극에 민감한 경우가 많아 쉽게 집중하지 못하기에 부모가 무엇을 시키더라도 잊어먹고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는 경우도 많다 (이해하시기 힘들다면 이메일을 쓰다가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아마 많은 경우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잊고 귀를 막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변수와 가능성들이 있기에, 나는 아이가 내 말을 무시하고 뛰어가거나, 질문에 엉뚱한 답을 늘어놓아도 가급적 화를 내지 않고 반복해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순간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언젠가 더 나아질 날이 오겠지 생각하면서...







이사 준비로 정신없던 지난 주말,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며 와이프가 들려주는 아이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던 중 앞의 큰 트럭이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보여주어 급정거를 했다고 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중에 뒷 좌석에서 들려온 예상 못한 한마디.


"Are you OK?"


보통 차 안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주변 경치를 보며 즐거워하는 게 전부이던 아이에게서 나온 질문이기에 더욱 놀라웠으리라. '나는 괜찮다. 너는 괜찮냐'라고 물어봤을 때는 더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OK. 앞에 안 보여"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엄마 안부를 물어보고, 괜찮냐는 엄마의 질문에 대답하고 '혹시 앞에 잘 안 보여서 갑자기 멈춘 거냐'라고 물어보는 아들. 엄마의 안부를 물어봐 준 것도 고마웠지만,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이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 다른 사람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기 - 에 나와 아내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비록 동년배의 아이들에 비하면 영어든 한국어든 많이 모자라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아이가 한 발씩 밖으로 나가다 보면 언젠간 스스로 궁금한 것들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쑥쑥 성장해 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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