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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Dec 14. 2022

엄마가 예뻐 아빠가 예뻐?

아이가 정치를 한다

2017년 UT Speech & Hearing Center에서 태민이의 스피치 테라피를 받을 때의 일이다. 이곳은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특수교육 학과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다 보니 대학원생이 주 교육자로 아이를 상대하고 교수가 어드바이저로서 옆에서 조언을 주는 식으로 테라피를 진행했다. 어느 날 교수가 "태민이에게 모국어로 뭔가를 물어보라"라고 지시해서 별생각 없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대학원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이야기해보니 이 친구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어를 꽤나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교수와 대학원생 모두 둘 다 금발머리의 백인이라 한국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기억을 되짚어 봐도 그들 앞에서 한국말로 나쁜 얘기를 한 적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외국인도 인정할 정도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아이에게 어렵고 짓궂은 질문이다. 마음이 고운 아이의 경우 차마 한쪽을 못 고르고 도망가거나 울음을 터트리기도 할 정도니까. 하지만 우리 아들 태민이는 그런 거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대답한다. 어릴 때는 언제 어디서건 "아빠 좋아!"를 외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느라 진을 뺀 엄마를 섭섭하게 만들었고, 요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시키지 않아도 "엄마 예뻐 고마워"를 외치며 애교를 부리며 아빠는 뒷전이다. 


며칠 전 저녁시간에도 엄마를 꼭 안아주며 "엄마 예뻐, 고마워, 사랑해~!"라고 애교를 부리기에 질투가 나서 "태민아, 그럼 아빠는? 엄마가 예뻐 아니면 아빠가 예뻐?"라는 질문을 날렸다. 사실 대답이 뻔했기에 좌절하며 식탁에 엎드릴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온 답이 걸작이다.



"태민이가 예뻐"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와이프가 "내가 좋아 태민이가 좋아?"를 물었을 때 "나는 내가 제일 좋아"라고 답하며 센스 있었다고 자화자찬했는데, 그것이 고작 9살짜리 수준이었나 싶은 생각에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아이가 기대치 않은 정치질(?)을 하면서 제 3의 답을 - "중립국." - 내놓은 것에 기뻐해야 할지도? 새삼스레 아이가 이런 고차원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음에 놀라워하며 와이프와 웃음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그날의 기억을 돌이키니 입맛이 쓰다. 오늘 밤은 최인훈의 광장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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