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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31. 2023

사랑하는 Daddy, 아니 아~빠

어제는 미국에서 맞은 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신분과 재정적으로 한창 힘들었던 이민 초기에는 생일만 되면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는 우울한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영주권이 나오고 여러 가지로 생활이 안정되고 나서 맞은 첫 생일, 큰 걱정거리 없이 하루를 열심히 살고 한주를 보내면 안온한 주말을 보내는 일상 속에서 맞는 첫 생일은... 정말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을 선사했다.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일상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만 60세 정년과 높은 연봉을 보장하는 직장, 2억 원에 달하는 유학 비용,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포기하고 타국에서 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아들 태민이다. 2013년 7월, 태어난 녀석을 안고서 바란 것은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남들처럼 건강히만 자라다오' 였지만, 생각보다 늦은 발화와 어색한 눈 맞춤은 다름 아닌 자폐의 전조였다. 유학 도중 '이 녀석이 한국에 돌아가서 험난한 경쟁과 학교에서의 괴롭힘을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을 끝끝내 떠나보내지 못한 나는 뒤늦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전공 및 경험과 전혀 관련 없는 IT 프로젝트에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투입되어야 했다.






와이프와 아이가 잠든 늦은 밤, 독한 술 한잔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바다 건너에서 중소기업 외노자로 살아가고 있는 신세가 서글플 때가 있다. '그냥 다 그만두고 한국 가서 살까?' 이루지 못할 상상은 덤이다. 하지만 태민이의 성장과 발달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게 된다. 엘리베이터만 보면 죽어라고 계속 타봐야 하고, 화장실에 있는 손 건조기만 보면 무서워서 귀를 틀어막으며, 한두 마디 단어로밖에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던 녀석은 지난 5년간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새 제법 완성된 문장으로 말을 건넨다. 때로는 영어로, 때로는 한국어로. 또한 부모와 치료사 외엔 커뮤니케이션을 시도도 하지 않던 것이 불과 1-2년 전인데, 요새는 모르는 어른이나 자기 또래에게도 'Hi'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작년 11월 한국에 돌아가 외가 친척들과 점심을 함께 했을 때, 태민이를 5년 만에 본 작은 삼촌은 놀람이 가득한 얼굴로 "네 엄마한테 듣던 거랑 전혀 다른데? 하나도 모르겠어"라며 아이를 몇 번이고 바라보시곤 했다. 뭐 반쯤은 오랜만에 본 조카 기분 좋으라고 해 주신 덕담이겠지만, 그래도 지난 긴 시간 동안 나와 와이프가 들인 시간, 노력, 돈이 헛되이 흘러나간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배 터지게 저녁을 먹자마자 본인이 손수 골라온 케이크를 얼른 먹고 싶어 (...내 생일인데?) 태민이는 매우 조급하다. 촛불이 켜지고 박수를 치며 빠른 템포로 노래를 시작하는 녀석. 친구들 생일 파티를 몇 년 따라다녔다고 '노래가 끝나야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불문율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Daddy, 아니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


어? 작년 내 생일만 해도 사랑하는 건 '내 친구' 아니면 'dear my friend'였는데? 그래, 뭐 Daddy나 아빠나 토메이토나 토마토나 그게 그거지. 아빠는 너랑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고마워.


두번째로 불렀을때는 '사랑하는 아~빠'로 실수없이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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