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경제적 이유로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두 아들을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성인으로 키워 내셨지만, 정작 다 큰 자식 덕을 봐야 되는 시점에 큰아들이란 놈은 훌쩍 바다 건너로 날아가 버렸다.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여드리기도 어렵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한국에 있는 것처럼 찾아뵐 수도 없으니... "아들 키워봐야 하나도 쓸모없어"라는 농담을 들어도 요새 웃음이 나지 않는 게 이래서인가 보다. 얼마 전, 생신을 맞은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보고 싶다 얘들아"라고 하시며 애써 눈물을 감추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정말 참담했다. 아이의 자폐만 아니었다면 생일 축하를 전화로 끝낼 일은 절대 없었을 텐데.
큰아들을 미국에 살게 한 주범(?)인 손자에 대한 사랑도 가슴이 저릴 정도다. 매주 전화로 하는 말씀 나눔에서 늘 '태민이를 성장시켜 주시고 그 아이의 아픔을 차라리 제가 감당하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끈해진다. 부모인 나도 이렇게 기도하지는 못하는데. 제대로 된 애교도 부리지 못하고 자주 보지도 못하는 손자에게 어떻게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어제저녁,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서 누워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가 태민이 기도 많이 한다고 하시네"라고 말을 건넸다. 평소에 할머니랑 영상통화만 하면 1분도 안되어 쪼르르 도망가는 손자는 불쑥 한마디를 꺼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학교 가는 거 좋아' 라면 모를까 '할머니가 좋아'는 정말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옆에 있던 와이프의 두 눈도 휘둥그레. 누가 자기를 예뻐하고 사랑하는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던가? 말도 완전하지 못한 이 아이가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부디 바다 건너 할머니의 간절한 눈물과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좋은 소식을 최대한 많이 전해드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