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조그만 생명이 소리를 내며 꿈틀거린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것조차 아직도 질 나쁜 농담같은데, 이 녀석은 벌써 훌쩍 자라 어느새 열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다. 그 대가로 나는 몇 킬로의 체중과 부쩍 눈에 띄는 흰머리를 얻었지만 불만은 별로 없다. 나도 부모님의 희생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고 자라왔으니까.
하지만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작년과 올해 주변의 많은 분들이 부모님의 건강상 문제로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해야 했다. 우리 가족만 해도 작년 말 장모님의 뇌출혈 및 수술로 온 가족이 힘들어했고, 올해는 어머니와 이모부의 건강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다. 어머니의 원인 모를 위 통증과 힘 빠짐이야 (본인의 진단대로라면) 나이 듦의 일부로 이해하면 될 일이지만, 이모부의 폐 질환은 치료방법조차 없다는 점이 온 가족을 힘들게 한다. 힘들어하는 이모와 이모부를 볼 때마다 찾아뵙고 위로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내 신세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한국 땅 안에만 있어도 이렇게 무력하지 않으련만...
내가 미국에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아버지, 어머니, 혹은 어느 누가 급작스레 세상을 뜨더라도 고작 장례 마지막 날에 도착하는 것이 고작이고 어쩔 때는 그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 힘껏 안아주며 위로하고픈 친구의 상사에도 그저 부의를 보내며 안타까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의 결과이지만 아직도 나는 그 대가를 치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언제쯤 타국에서의 삶과 가족의 떠남을 그러러니 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