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May 29. 2023

"괜찮아"에 폭소한 이유

이번 주말은 Memorial Day weekend, 한국식으로 따지면 '현충일'이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현역 군인들 및 베테랑들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이기에 MLB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팀들은 군복을 컨셉으로 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다. 몇 달 만에 맞는 3일짜리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고, 그래서인지 언제나 성황인 테니스나 야구 모임도 이번 주말엔 영 호응이 시들하다. 평소라면 우리도 신나서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가련만, 이 달 초 한국을 다녀온 뒤 셋 모두 피로와 감기몸살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집에서 쉬기로 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며칠 전 그네의자 (Swing Chair)를 샀다. 아니, 생각해 보면 작년 말 한국에서 고모부 댁을 방문했을 때 옥상에 놓여있었던 비슷한 걸 태민이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하나 살까?" 와이프에게 얘기하긴 했었지. 우리 집 마당이나 덱이 워낙 좁으니 놓을 곳이 마땅찮아 포기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맥락도 없이 덱에 뭔가 하나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글쎄... 어쩌면 뒷마당에 불어온 상큼한 봄바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립할 때부터 옆에서 "기다려" "기다려"를 외치며 흥분하던 태민이는 틈만 나면 그네의자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해가 살짝 내려간 늦은 오후에 아이와 함께 흔들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절로 미소가 나오며 행복이 별 건가 싶다. 와이프도 '이거 정말 좋다'며 만족해하는 걸 보니, 조그마한 변화 하나가 삶의 질에 꽤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 이런데 쓰려고 돈 버는 거지.





어제저녁, 와이프와 둘이서 흔들그네에 앉아 있는데 아이가 와서 빈 자리를 두고 내 무릎 위에 털썩 앉았다. 앉아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니 새삼 많이 컸다는 것이 실감 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아이를 품 안에 꼭 안으며 "태민아 사랑해"라고 말했을 때의 답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괜찮아"



쿨하게 답하고 도도도 뛰어가버리는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던 우리는 배가 땅길 정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세상에 I love you에 No, thank you로 답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들자식 키워봐야 다 헛거라더니... 그래도 남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한 자기 의사표현을 명확히 한 것이니 그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긴 하다. 


아들아, 다음엔 예의상으로라도 I love you, too로 답해주면 안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 vs 소음, 자폐인에게 가르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