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한 번쯤 느껴보셨겠지만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은 어른과 꽤나 다르다. 그랜드 캐년의 웅장함을 앞에 두고도 쭈그리고 앉아 흙장난을 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저게 뭐가 그리 재미있나' 싶어 어처구니없는 동시에 신기한 마음이 든다. 자폐 아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다. 물론 그들의 경우 관심 대상과 그 강도가 평균적인 아이들과 차이가 꽤 나는 경우가 흔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무조건 타봐야 하고 계량기를 매일 들여다볼 정도로 사랑하던 태민이는 요새 자동차라는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처음에는 글자와 숫자가 새겨진 번호판만 좋아했는데, 그게 차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간 것이다. 아니, Disney에서 만든 Cars 애니메이션을 매일같이 돌려보면서 자동차를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원인이야 뭐든 간에, 계량기 같은 마이너(?)에서 자동차 같은 건전(?)하고 일반적인 관심으로 옮겨간 것이 반갑기까지 하다.
처음에 독일 3사 (BMW, 벤츠, 아우디)에 대한 애호를 표할 때까지만 해도 '쪼고만게 보는 눈은 있네' 웃으며 와이프에 농담을 건넸고, 아마존에서 장난감 차를 사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동그라미가 겹쳐진 저 독특한 아우디 로고를 '써클써클써클써클'이라는 나름대로의 문법으로 표현한다는 게 엄청나게 신기하기도 했고. 하지만 아우디 장난감 차를 선물로 받은 다음날은 벤츠를 찾고, 사달라고 조르던 투싼 자동차는 정작 별로 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테슬라도 사달라는 식이니... 요새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야, 네가 돈 벌어서 사. 쟤들 비싸' 혹은 '아빠 돈 없어'라고 받아치게 된다. 애가 뭐 돈 개념이 있겠냐만은...
최근에 나를 뜨끔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한 달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을 보신 어머니께서 어린이날 선물로 장난감 자동차를 사주라며 금일봉을 하사하셨고, 태민이가 원하던 검은색 벤츠 SUV 장난감을 주면서 "할머니가 사주신 거야"라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뭐 늘 그렇듯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차를 가지고 놀기에 바빴고. 그 후로 2주쯤 지나서일까? 저녁에 벤츠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툭 던진 한마디.
단 한번 말해준 것을 그때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태민이. 관심 없어 보이고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때만큼 크게 깨달은 적이 없었다. 이전에는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도 미국 생활의 어려운 점이나 태민이의 개선 필요점 등 부정적인 얘기를 나눴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아이는 다 듣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