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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ul 29. 2023

자폐인 부모가 본 특수교사 고소 사건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보다 힘든 것이 만약 있다면 아마 장애인의 부모로 사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약자에게 비정한/관심 없는 동아시아 문화와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설 자리는 정말 좁디좁다. 여기에 더해 장애를 가진 이들이 홀로 서도록 만드는 (혹은 그들을 부양하는) 부담과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기에 장애인의 부모가 겪는 물질적 정신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만 해도 자녀 없이 한국에서 살 때엔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기에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장애 아동의 부모로 미국에서 살다 보니 한국의 분위기와 약자에 대한 태도는 정말 엄하고 비정하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좁은 닭장에 닭들을 몰아넣으면 스트레스로 주변을 마구 공격하듯이 사람 또한 좋지 못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자극을 받다 보면 같은 일에도 예민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전국장애인연대의 출근길 투쟁이나 해고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 등의 뉴스를 보아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방법이 정당하다 말하긴 어렵지만, 그들이 과연 다른 방식으로 요구사항을 의미 있게 전달할 기회가 있었는지, 그들의 억울함과 소외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유명 작가와 특수 교사 간의 갈등은 자폐인의 아버지이자 행동치료사 (Behavioral Therapist)의 남편인 나에게 꽤나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켰다. 일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폐 성향과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특수 학급에서 교육하는 과정에서 학대가 있었다고 유명 작가인 아버지가 의심하였고, 결국 해당 특수 교사를 고소한 것이 언론을 타며 비난 여론이 크게 일어난 사건이다.


우선 한 명의 자폐인 부모로서, 작가 부부가 아이를 키우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좌절을 거쳐 왔을지 알기에 그들이 학대를 의심하고 녹취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많은 자폐 아동들의 경우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힘들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작가의 주장대로 아이가 갑자기 강한 등교 거부의사를 표했다면 당연히 나라도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 짐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이의 폭력적 행동이나 특이 행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면 아이의 부모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학교와 피해자에 사과를 한 뒤 학교와 전문가의 리드에 따르는 것이 좋았을 텐데, 오히려 학교의 분리 교육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 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행동치료사로 일하는 와이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센터에서 마주치는 많은 자폐아동들이 행동적인 문제 (behavior)를 가지고 있고, 그중 일부는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때리기, 할퀴기, 침 뱉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고 한다. 의사소통 능력과 방법이 제한된 자폐인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다만,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의 태도를 교정하고 잘못된 행동을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간혹 '장애가 있으니 당신이 이해해야지', '알았으니 내 뜻대로 합시다'라는 식의 태도나 언행을 보이는 장애인 부모를 마주치게 되는데, 같은 입장인 나조차 이런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호의와 배려를 기대하는 게 잘못이 아니지만 그건 권리가 아닌데... 아니, 솔직히 말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노력하는 우리까지 도맷금으로 비난당하는 것이 싫다.





특수 교사와 작가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겠지만, 해당 교사가 수년간 활동하면서 동료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신뢰를 쌓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분명 뛰어난 특수 교육 능력과 아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하지만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녹음기에는 분리 교육을 힘들어하고 자리를 이탈하려는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네가 XXX 잘못을 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녹음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이쪽 전문가도 아니고, 이 일은 교육 철학과 방법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최소한 와이프가 일하는 행동교정센터 (ABA Therapy Center)의 방침은 아이의 부정적인 행동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무반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행동치료사에게 침을 뱉을 경우 무표정하게 닦아내고 하던 교육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나도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게 맞아? 나쁜 건 나쁘다고 가르쳐야 되는 것 아냐?"라고 몇 번이고 되물었는데, 이 방식의 이론적 배경은 나쁜 행동에 대한 반응 자체가 자폐 아동에게 강화물 (reinforcement)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침을 뱉었을 때 "Linda, it is a very bad behavior"라고 엄하게 주의를 주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관심을 받고 싶거나 지금 하는 치료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아, 침을 뱉으면 이 사람이 반응하겠구나 (혹은 이걸 안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오히려 해당 문제 행동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이다. 실제로 우리 아이가 공부 혹은 운동 중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는 등의 문제 행동을 보일 때 와이프의 조언대로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함으로써 결국 발생 빈도를 줄인 최근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특수 교사가 다른 방식으로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처했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든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잘잘못을 가릴 능력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저 그동안 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두 분이 더 이상의 어려움은 겪지 않길,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이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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