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의 살벌한 등록금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것이다. 거주하는 주의 주립대학을 가는 경우엔 그나마 좀 낫지만 학비와 기숙사비를 합치면 보통 연 2만 달러를 넘어가고, 타 주 대학이나 아이비리그 등 학비가 비싼 곳에 진학하면 심할 경우 한 해에 10만 달러까지도 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장학금이나 각종 보조금 혜택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자녀 학자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529 Plan"에 매년 적지 않은 돈을 적립하며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다.
529 Plan은 정말 좋은 제도이고, 한국에도 비슷한 것이 도입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대학에 가지 않는다면 (혹은 갈 능력이 안된다면) 이 제도는 큰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아이가 mental disorder (자폐, 다운증후군, 각종 지적 장애)를 가진 부모들의 입장에선 "우리 아이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고 자립도 쉽지 않을 텐데... 529 Plan 대신 뭔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는 장애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공적 제도가 있다. 성인이 되기 전엔 학교에서 Speech, OT 등 테라피를 무료로 제공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생활보조금 (Supplemental Security Income), 주택 보조, 공적 의료보험 (Medicare)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 혜택을 받으려면 본인 명의의 자산이 2천 달러 미만이어야 하기에 부모가 만일을 위해 자녀 이름으로 저축을 해 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2014년 법규 개정을 통해 등장한 것이 529A Plan, 소위 ABLE (Achieving a Better Life Experience) 계좌이다. 이 계좌에 불입된 금액은 세금 혜택 (투자수익 비과세)을 받으며 최대 10만 달러까지는 정부 혜택 대상자를 판단하는 자산 규모 (2천 달러)에 계산되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미리 이 계좌를 만들어 놓고 소액이라도 부모가 매달 불입한다면, 10년-20년 후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공적 제도 수급 자격은 잃지 않으면서 원금과 투자수익을 생활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만들 수는 없고, 미국 사회보장국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 지정한 카테고리에 해당되는 사람들만 가능하다. 최대 연간 1만 6천 달러까지 본인, 부모, 친구 등 누구나 불입 가능하며, 사용 용도에는 제한이 있지만 (Housing, Training, healthcare, basic living expense, transportation, education, financial management 및 legal fee 등) 그리 빡빡하지 않아 큰 문제는 아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어제 내 퇴직연금 (401k)과 연금저축 (IRA) 계좌가 있는 Fidelity에 아들의 ABLE 계좌도 개설했다. 앞으로 아들이 받는 용돈이나 버는 돈은 여기로 모아서 관리하려고 한다.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제도이고 나도 아직 공부가 모자라지만, 529A 혹은 ABLE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두신 부모님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제도인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