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때 독일군은 처형 대상인 유태인들에게 삽을 주고 구덩이를 파게 한 뒤, 바로 그 구덩이 앞에서 그들을 쏘고 그대로 흙을 덮어 묻어버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유태인들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을 텐데 왜 삽을 들고 독일군들에게 덤비지 않았을까? 답은 자명하다. 짧은 시간의 죽음 vs 곧바로 제압되어 본보기로 잔인하게 긴 시간 고문당하면서 겪는 죽음이라면 어지간해선 후자를 고르기 어려울 테니까. 그렇기에 그들에게 '저항'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는 주장은 어지간해선 하기 어려울 터이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기분이 가라앉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어 술 한잔 옆에 두고 과거의 선택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날. 긴 다툼과 한숨, 고민 끝에 한국은행에 사직서를 던지고 미국에 남기로 한 것이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험난한 세월을 거쳐 영주권도 받은 데다 연봉도 제법 오르고 사이드잡도 잘 되어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살던 때보다 훨씬 나아졌음에도 왜 난 아직도 그 순간을 돌아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을까?
오늘 점심을 먹던 중 고등학생 인턴 아이가 "Trolley Problem"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열차가 고장 나서 다섯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방향을 틀면 그쪽에 서있는 한 명이 죽는 대신 다섯 명은 무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열차는 그대로 달려가 다섯 명을 죽일 것이다. 당신이 차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들 재미있어하며 여러 가지 의견을 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꺼낸 한 마디에 분위기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 한 명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내 아들이라면 다섯 명이 죽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임을 질 거야. 나도 어릴 때는 안 이랬는데 가족이 생기니 우선순위가 바뀌더라. 근데... 분명 내 선택인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정말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
미국에 살면서 정말 많이 듣는 말이 "It is your choice"이다. 이 나라가, 회사가, 사는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옮겨라. 누구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네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 얼핏 듣기엔 굉장히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 같지만, 사실 많은 경우 "꼬우면 나가"와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갈데 있으면 딴 데 가 보든가. 아니지? 그러면 불평 말고 시키는 대로 해'의 신사적인 버전인 경우라고 보시면 되겠다.
인턴 아이에게 한 대답을 사무실에서 곱씹으며 문득 깨달았다.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 was NOT my choice. 유학기간 동안 미친 기세로 오른 집값,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 미국 생활을 통한 아이의 성장을 무시하고 차마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천천히 자기가 묻힐 구덩이를 파던 유태인들처럼 내키지 않는 걸음을 걸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길로 향한 것을.
나도 안다. 누구나 인생은 힘들고, 지금 이 글조차 한국에 계신 자폐아동 부모들에게는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앞 차 범퍼에 붙은 "Do more of what you love" 스티커를 보며 인생을 반추하고 있는 주제에 내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 그저 이 힘든 마음과 시간이 속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