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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05. 2021

자폐, 함께 걸어요

받음, 그리고 나눔


받음


 “굳이 MBA를 텍사스로 간 이유가 뭐예요?” MBA 입학을 준비할 때, MBA를 하면서, 심지어 졸업 후 버지니아에 옮겨와서까지 꽤 많이 들은 질문이다. 아무래도 텍사스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인식은 “사막, 석유, 그리고 카우보이”정도여서일까? 텍사스에도 한국 사람이 많냐? 라든가 거기도 사람 살만한 곳인가? 하는 등의 질문에 어디서부터 대답을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있었으니......


 아무튼 “공식적”인 대답이거나 대화 상대가 그리 친하지 않을 경우 “회계와 테크 쪽이 강해서 제 Background인 Finance와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정도로 대부분의 답변을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상대가 우리 가정의 문제 – 아이의 자폐 - 를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할 경우 “UT Austin이 미국에서 특수 교육 (Special Education)이 가장 좋은 학교 중 하나야”라는 말만 해도 충분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수교육의 질은 공립학교의 수준과 비례하기 마련인데 텍사스의 평균적인 공립학교 수준은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에 조금이라도 살아봤다면 이런 부분을 가장 먼저 고려했겠지만, 나나 와이프나 미국이라고는 출장으로 두어 번 가 본 게 전부였던 만큼 UT 특수교육이 좋으니까 다른 부분들도 괜찮을 거라고 짐작하여 UT MBA에 진학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텍사스에서의 2년은 “만남의 축복”이라고 요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자폐 진단을 내린 의사의 추천서를 통해 UT Austin의 특수교육 클리닉에서 현직 교수 및 대학원생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첫 번째이다. 또한 학교에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아이를 사랑해주는 특수교사 Livi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함박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며 “자기 아이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을까?” 생각도 여러 번 들 정도로 듬뿍 사랑을 쏟아 아이를 돌보아 주었다. 헤어진 지 1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도 "Ms. Livi"를 찾는 아이를 볼 때마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았음에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이다. 또한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가 있을 때마다 주변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적합한 치료사를 소개받을 수 있었으며, 만난 치료사들이 모두 아이를 아끼는 마음을 품고 집에서 아이의 발달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 및 도구를 아낌없이 소개해 주었다. 고작 미국에 건너온 지 1년 정도밖에 안되고 영어도 더듬거리는 한국인 엄마가 미국에 평생 산 엄마들에게 치료실 및 도구에 대한 정보를 나누게 되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성경 구절처럼 우리도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고자 해 왔다. 마침 교회에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도 우리 아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미국으로 이민을 온 가정들이 있었고, 그동안 정리해놓은 자료들을 그들과 공유하며 최소한의 노력으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내 일처럼 도왔다. 사실 어떤 부모들은 이런 정보를 나누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는데, 해당 시설이나 치료사가 바빠져서 정작 자기 아이를 위한 시간을 잡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같은 아픔을 가진 그들의 절박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정작 안타까운 건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였다. 한국에서부터 아이에게 언어치료를 시켰던지라 아내는 시설에서 만난 부모들과 계속 연락하곤 했었는데,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겪는 차별, 치료 정보 및 교구의 부족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음에 가슴 아파하곤 했다. 그러던 중 ‘네가 받은 것을 한국의 자폐아 부모들에게 나누라’는 강한 마음의 울림이 왔고, 결국 “자폐, 함께 걸어요”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국의 부모들과 소통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나나 와이프나 전문가가 아니기에 치료 이론이나 기법을 나눌 수는 없다 (그건 한국의 교수나 치료사들이 할 일이다). 다만 자신의 아이 때문에 특수교육 선진국인 미국으로 이주하는 케이스가 흔치 않고,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먹고 살 걱정이나 자신의 아이를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미국에서 직접 경험한 다양한 종류의 치료들,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면서 얻은 다양한 노하우,  미국 치료사들의 Tip, 아이를 지도할 때 쓴 교구 등 우리가 직접 발로 뛰며 얻은 폭넓은 정보는 한국의 어떤 전문가라도 쉽게 얻기 힘든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마치고, 아이를 재우고 나서 지친 몸을 끌고 스토리보드를 짜고, 대본을 만들고, 녹음을 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나면 사명감이고 소명의식이고 희미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필요한 단 한 사람이 이 영상을 보고 자신의 아이를 위해 활용할 그 순간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자 한다. 우리 가족이 언제까지 미국에 머물 수 있을지, 얼마나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한 많은 분들에게 가진 것을 계속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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