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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Jan 09. 2021

Epilogue - 어쩔 수 없어. 해버리자!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가족”을 읽고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나서 평생에 걸쳐 아들과 가족이 어떻게 공생할지 고민하였다고 한다. 그의 고민은 “개인적인 체험”(머리에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두고 기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치료탑, 치료탑 혹성” (사람을 치료하는 탑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등의 작품에서 드러나 있다.


대학교 때 연극반을 잠깐 같이 하며 알게 된 친구 Angie의 추천으로 알게 된  “회복하는 가족”이라는 에세이집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를 키우는 일상과 이에 따른 다양한 소회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놓았다. 사실 나는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를 선호하는 편이라 작가의 조곤조곤한 서술이 마냥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지만, 같은 장애아의 아버지가 나눈 몇몇 경험은 잔잔한, 때로는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1. 노래, 그리고 음악

아들 히카리는 5살까지 전혀 발화가 되지 않았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온갖 새들의 소리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작가는 히카리가 숲에서 새소리를 듣고 “뜸부기입니다”라고 최초로 언어를 사용한 순간을 생생히 묘사한다. 히카리는 자라며 새소리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 대신 음악에 큰 관심을 보이며 성인이 된 지금도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히카리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아들 태민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태민이도 히카리와 마찬가지로 말을 늦게 시작했지만, 말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부터 동요의 선율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노래만 부르는 게 답답해서 ‘제발 노래 말고 말을 해라!’ 싶을 때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통해서 태민이의 언어가 발달했다는 점은 나도 아내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음악시간을 가장 즐거워하고 쉽게 따라 배우는 태민이를 보면서 ‘겨우 이 정도로 무슨..’과 ‘혹시나 재능이 있는 것 아닌가?’ 사이에서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는 나. 히카리처럼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더라도 음악이 평생의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면 이 순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으리라.


2. 없어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한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작가가 잠시 아들을 잃어버린 일화일 것이다.  백화점에서 히카리가 고집을 부릴 때 작가는 한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된다. 


 “…모든 것을 방기해버리고 싶은 묘하게 무책임한 심리 상태에 빠지면서 현실에서 붕 떠오른 기분에 사로잡혔다…나는 그냥 히카리의 손을 놓아버리고 곧장 신관으로 나아가 필요한 물건을 사고…다음에 아까 그 장소로 갔지만, 당연히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없는 분 혹은 정상적인 아이를 키우시는 분은 공감하기 힘드실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아이의 손을 놓고 가버릴 수가 있나’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꽤 많이 했던 나는 오에 겐자부로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아들이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소리를 빽빽 지르고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말 (혹은 이치가 닿지 않는 말)을 쏟아내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 차근차근 설명하고 연습시켜도 멍하니 나를 쳐다보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들을 볼 때 가끔씩 나도 없어져버리고 싶어 지니까. 잠든 아들의 볼을 쓰다듬으며 “너를 위해서 견뎌야지”하다가도 ‘인생 reset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상하는, 그러다가 그런 나를 비난하고 혐오하는 내 속의 다른 나. “애 때문에 80까지는 일해야 해”라고 말했던 무한한 책임감의 지인에도 공감하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마음에도 공감하는 건 분명 모순이지만, 내가 정말 철저히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한국에서 쌓아온 모든 걸 포기하고 이국 땅에서 맨땅에 헤딩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3. “어쩔 수 없어. 해버리자!”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고통이나 늘 넘어서야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참을성 강한 사람들이고 그들 또한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어. 해버리자!”라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아닐까..”

태민이는 남자아이답지 않게 정말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다. 자기보다 어린 아기들도 신나서 노는 미끄럼틀에서도 조심스레 내려가고 뭔지 모르는 물건은 잘 건드리지도 않는 그런 아이. 그렇기에 자기가 잘 못하는 것을 할 때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금세 짜증을 내곤 했다 (유감스럽게도 새롭게 배우는 것은 대부분 잘 못하는 것이기 마련이다).  이전에는 “얘는 왜 이렇게 뭘 안 하려고 할까”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어쩌면 태민이는 자신의 어려움에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나와 아내의 강권에 결국 “어쩔 수 없어, 해버리자!”라고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나보다 훨씬 어린 이 아이도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이겨나가고 있는데, 아빠가 되어서 아들에게 질 수는 없으니까. 삶에 힘들고 원하지 않는 선택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해버리자!” 외치며 한 발씩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비록 그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영상: [Book review] 오에 겐자부로 "회복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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