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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Feb 19. 2021

한발 먼저 접했던 미국 야구 (1)

한미 연합 야구팀 USAGY Eagles

한창 야구에 미쳐 있었던 2013년 어느 초여름, 예정된 리그 경기가 없어 '주말엔 뭐하지' 하며 인터넷 카페를 뒤지고 있었다. 마침 필자의 주 포지션인 외야수를 급하게 찾는다는 글이 있어 잘됐구나 싶어 게시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외야수예요? 잘됐네요. 주소 보내줄 테니 그날 와서 전화 주세요. 혼자서 못 들어갑니다"


답문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회인 야구에서 이렇게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을 '용병'이라고 하는데, 보통 용병들에게는 주소를 보내주고 알아서 찾아오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장에 혼자서 못 들어간다니 무슨 프로야구장이라도 되나?






알고 보니 경기장은 성남 공군기지 내 운동장이었다. 성남 공군기지에는 미군 부대들도 주둔하고 있기에 검문검색이 미군 기지처럼 이루어졌다. 미군 특유의 꼼꼼한 검문검색과 신분증 반납, 내부인의 외부인 에스코트 등은 미 2사단에서 카투사로 군생활을 한 필자에게 옛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중고등학교의 모래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던 필자에게 기지 내 운동장의 상태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불규칙 바운드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평평한 운동장이라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노란 머리 외국인들도 같이 몸을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팀 감독에게 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야구장을 빌려서 운동하실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기 미국애들도 팀원이에요?

"아, 난 미군 군무원이에요. 우리는 미 연합 팀입니다"


이것이 나와 USAGY Eagles의 첫 만남이었다. USAGY는 U.S. Army Garrison Yongsan (미 육군 용산 주둔지)의 약자였고, Eagles는 당연하게도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 한인 미군 군무원들과 미군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연합 야구팀이라고 했다. 시설 예약만 하면 운동장을 확보할 수 있기에 거의 매주 주말마다 게임을 한다고 했고, 운동장 대여 비용이 없다시피 했기에 팀비 부담도 굉장히 낮았다. 미군 시설이기에 운동장 상태가 좋은 건 말할 필요도 없었고... 마침 Eagles 팀에서도 잦은 미군들의 전출로 멤버 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야구 실력도 좋고 부를 때마다 나오는 필자를 좋아했고, 결국 세네 게임 이런 식으로 뛰다가 정식으로 팀에 가입하게 되었다.

 

유니폼 로고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먼산...)






금요일 게임은 (지금은 없어진) 한남동 외국인 아파트 운동장에서 오후 7시부터 시작했다. 시청 근처에서 근무하던 필자는 6시가 되자마자 헐레벌떡 출발해도 지독한 교통체증 때문에 번번이 게임 시작 몇 분 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야구 배트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사무실에서 뛰어나가던 필자를 보고 동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살짝 민망하기도 하다. 또한 몸도 제대로 못 풀고 1번 타자로 들어갔던 수많은 시합에서 다치지 않은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아무래도 아파트 운동장이었기에 운동장은 정식 규격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측 펜스는 그나마 90m를 넘어갔지만 좌측은 그마저도 되지 않아 좀 잘 맞았다 싶으면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곤 했다 (필자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시즌이 있었는데 아마 이 운동장이 정식 규격이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회인 야구에는 우타자가 많고, 대부분의 아마추어 우타자는 공을 당겨서 운동장 왼쪽으로 날리는 만큼 투수들은 정말 힘들었으리라. 왼쪽으로 공이 뜨면 '이번에도 설마?' 하며 긴장해야 했을 테니... 좌측 펜스 너머에는 병원 건물과 주차장이 있었는데, 외야 수비를 보면서 공이 머리 위를 넘어갈 때면 언제나 "쨍그랑"이나 "쾅"소리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시뻘건 얼굴로 운동장에 쳐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는데, 파손된 차나 기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아파트 정문의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전자이길 바랄 뿐이다


일요일 게임은 대부분 용산 미군기지 내 야구장에서 진행되었다. 미군 부대 내에는 아래 사진처럼 4면의 운동장이 홈플레이트를 맞대고 있다. 미군과 그들의 가족이 야구뿐 아니라 리틀야구, 소프트볼 등의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기 때문에 운동장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며, Eagles는 언제나 가장 큰 야구장을 빌려서 시합을 했다. 타석에 들어서면 외야 펜스 너머 위압적인 초고층 주상복합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이유 없이 살짝 주눅이 들곤 했다. 


외국인 아파트든 미군기지든 모두 미국 영토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출입은 엄격히 관리되었다. 상대팀이 누구든 무조건 모든 참석자의 이름, 주민번호, 차량 색상 및 차량 번호를 사전에 문서화하여 제출해야 했고, 이를 경시한 상대팀 멤버 한둘이 입장에 실패하고 돌아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Eagles 감독이 게임 1시간 전 모두를 에스코트해서 들어갔기에 게임이 있는 날이면 미군기지 앞 주차장에는 야구복을 입은 사람 20여 명이 어슬렁거리며 입장을 기다리곤 했다.


좌: 미군 부대 내 야구장 / 우: 타자 시점에서 보이는 야구장 전경



한발 먼저 접했던 미국 야구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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