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팀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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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les에서는 보통 주 1~2회 게임을 잡았다. 일요일은 무조건이고 상황에 따라 금요일 저녁에도 게임을 잡는 식이다. 물론 우천 취소되거나 미군 부대 스케줄로 예약이 불가능한 기간도 꽤나 있었기에 1년에 100게임씩 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보통 1년에 20경기에서 60경기까지도 진행하곤 했다. 대부분의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 팀당 8~12경기를 치르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마저도 굉장한 숫자다.
게다가 사회인 야구 리그 게임에서 2시간 시간제한이 있는 것과는 달리 짧게는 7이닝 (2시간 반~3시간), 보통은 9이닝 (3시간~4시간 반) 게임을 진행하였기에 시간에 쫓기는 느낌 없이 여유 있게 운동할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었다. 물론 9이닝 게임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야구 초보이거나 9이닝 게임을 처음 접하는 분을 초대하면 처음에는 이 상황을 즐기다가도 막판이 되면 체력 저하를 보이며 자진해서 벤치에서 쉬다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필자처럼 원래 주말에 2~3게임씩 뛰던 사람에게는 별로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운동할 수 있음이 즐거울 뿐.
Eagles 멤버들의 야구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미군들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접한 친구들이라 기본기부터 한국인 멤버들과 차이가 컸다. 게다가 미군들은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의 한창 신체능력 좋을 때 입대하여 한국에 왔기에 30~40대가 주축인 일반 사회인 야구팀들과의 대결에서는 기동력만으로도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Eagles의 중심 타선은 거의 언제나 미군들로 채워졌기에, 다른 팀에서 대부분 4번을 치던 필자가 Eagles에서는 출루율과 기동력이 중시되는 1번 타선에 주로 들어가곤 했다.
그나마 타격이나 수비 등은 한국 사회인 선수들 중에서도 비교할 수 있는 선수들이 가끔 있었지만, 투수 경험이 있는 미군들은 차원이 다른 실력을 보여주곤 했다. 가끔씩은 프로 경험 (싱글 A에서 트리플 A)이 있는 친구들이 오기도 했는데, 그들이 등판하면 상대 팀 타자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한 번은 Eagles의 전직 트리플 A 투수와 상대팀의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는) 전직 프로 선수가 대결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결국 프로 선수가 안타를 치고 나가긴 했지만 풀카운트까지 몰리며 굉장히 고생을 했다. 프로 출신이 이 정도면 사회인 타자가 이런 투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높은 수준의 게임을 자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었지만, Eagles 내부에서는 잊을만하면 파열음이 들려왔다. 형식은 한미 연합팀이었지만 실제로 감독 이외에는 열심히 나오는 군무원들이 별로 없었고, 이에 운동장 예약 등에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군 내 다른 운동 팀들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는 경우가 잦았다. 또한 미군들은 대부분 1년도 되지 않아 국내 다른 기지나 타국으로 전출이 되었기에 감독은 늘 새 미군 멤버를 모집하느라 고생해야 했다. 더군다나 많은 미군들은 자기들 덕분에 운동장 예약이 가능한 걸 알아서인지 귀찮은 건 하지 않고 게임만 하려고 들었고, 그 때문에 한국인 팀원들만 팀 운영비 및 장비 조달, 경기장 정비, 상대팀 물색 등을 분담해야 했다. 또한 나온다고 하면 반드시 나오고 급한 일이 생겨 못 나올 경우 바로 이를 통보하는 한국인 팀원들과 달리, 몇몇 미군 팀원들은 말도 없이 안 나오거나, 안 나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해서 감독이 라인업 작성에 늘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한 번은 보다 보다 못해 감독에게 그냥 이런 불성실한 멤버들은 내보내면 안 되냐고 건의했더니
라는 답이 돌아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주한 미군의 캐치프레이즈가 '같이 갑시다 (Let's go together)'인 것을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입안에 쓴 맛이 돈다
'시간제한이 없는' '도심'의 '정식 규격 야구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 탓일까? 나름 사회인 야구에서 유명하다는 팀들과 심심찮게 게임을 벌이곤 했다. '사회인 야구 이야기' 웹툰을 연재하는 유영태 작가의 'SAYAI 야구단', 양준혁 전 삼성 라이온즈 선수가 이끄는 '멘토리 야구단', 개그맨 정준하가 소속된 '한 야구단' 등이 필자가 기억하는 팀들이다. 이런 유명 야구단에는 연예인뿐 아니라 전직 운동선수들이 소속된 경우가 많아 언제나 긴장감 넘치는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멘토리 야구단과의 시합을 제일 좋아했는데, 모든 선수의 기량이 좋아서 언제나 긴장을 풀 수 없기도 했고, 선발로 올라오던 전직 핸드볼 국가대표 및 가끔씩 마운드에 올라와서 던지시던 양준혁 감독과의 승부가 굉장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감독님, 기억 못 하시겠지만 7구째였나 8구째였나 저한테 포크볼까지 던지셨죠...).
2017년 필자가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USAGY Eagles와의 인연은 일단락되었다. 송별 저녁에서 그동안 고생했다며 액자까지 만들어서 준 감독님. 한국에 가면 꼭 한번 술 한잔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형님 덕분에 미국 야구를 먼저 맛볼 수 있었노라고. 혼자 팀 이끄느라 고생 많으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