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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Feb 20. 2021

야구로 맺은 첫 인연

한국석유공사 야구부와의 추억

가장 약한 것도 가장 질긴 것도 인연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한번 돌아서면 끝나는 것도 인연이지만, 평생 머릿속을 맴돌면서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아쉬움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인연이니까. 필자에게는 한국석유공사 야구부가 꼭 그런 존재다. 단 한해 머물렀을 뿐인 회사였고, 악명 높은 상사들 아래서 고생만 잔뜩 하고 나가서 어지간하면 관련자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지는 게 인지상정임에도 필자는 퇴사 후 10년이 넘게 지나도록 몇몇 사람과 연락하고 지낸다.



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한 2009년 말, 동기 회장 J는 알고 보니 서울고 선배님이었다. 자타칭 야구광인 필자보다 훨씬 야구를 좋아하던 J. 입사 전부터 회사 야구부 사람들과 알고 지내며 입부를 약속했다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필자도 대학 재학 중 '언젠간 야구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선배이자 동기 J를 따라 야구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장난 삼아 하던 캐치볼 외엔 야구 경험이 아예 없었기에 처음에는 당연히 후보 겸 대수비로 시작했지만,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열심히 연습에 참석하면서 어느샌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도 야구부원이라는 소속감이 생겨났다. 매일 같은 야근과 빡빡한 사무실 분위기에 늘 힘들었지만 가끔씩 함께하던 야구부 선배들과의 점심 약속과 주말의 야구가 있었기에 버텨나갈 수 있었다. 

 






2010년 말, 큰 기대 없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응시했던 한국은행 입행 시험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정든 야구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별을 고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주칠 때마다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물어주고 야구 초보였던 필자에게 각종 야구 관련 가르침을 주었던 S 팀장, 선배이자 야구 친구였던 J, 훌륭한 감독이자 타격의 롤모델이었던 Y 과장 등등. 어렵게 꺼낸 이별의 말에 다들 매우 놀라워하고 아쉬워했지만, 다들 필자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내년에는 솔이를 붙박이 3번으로 쓰려고 했는데..." 하던 Y의 아쉬움 가득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2011년 어느 봄이었나 여름이었나, 새로운 회사 적응도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Y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 시합에 인원이 모자란데 혹시 시간 되냐고. 야구라면 발 벗고 찾아가던 필자가 이를 마다할 리 없다. 어차피 선수 등록을 말소한 것도 아니었기에 참석에 문제도 없기도 했고... 그런 일이 반복된 게 한번 두 번. 그해 말에 Y가 물었다. 

"내년에 그냥 제대로 등록해서 뛸래?" 

"그럴까요? 저야 좋죠" 

한 시즌만에 이런 식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회사 야구부 안의 외부인으로서 어색한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해외 사무소에서 돌아온 분에게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는지 질문받았을 때, 신입부원에게 필자를 소개해야 했을 때 등등. 그래도 사람들이 워낙 좋았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계속 나갔고, 회식이든 시합이든 연습이든 최대한 참석하려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석유공사 게임에서 유독 임팩트 있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긴 승부를 마무리짓는 끝내기 홈런, 9점 차로 지고 있던 경기를 뒤집는 끝내기 안타, 플레이오프에서 선취점을 내는 중월 3루타 등은 지금 돌아보아도 등골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도 그만둔 애가 왜 계속 나와?'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 더더욱 집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좌: 시합 중 조명이 나간 안양 석수야구장에서. 저때가 10시였나 11시였나..? // 우: 기분 좋은 끝내기 승리 후






아쉽게도 석유공사 야구부와의 동행은 결말이 예정되어 있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라 석유공사는 울산으로 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년, 한게임 한게임 뛸수록 다가오는 이별은 더욱 선명해졌고, 팀원들은 "주말마다 울산 올 거지?"라는 말로 아쉬움을 돌려 표현하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어 중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는 기쁨이 있었지만,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지 못한 아쉬움도 만만치 않았다. 2014년 말에 올렸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는 그때의 감정이 짙게 묻어나 있다. 


올해는 석유공사와의 마지막 해였다. 울산 이전으로 인한 예정된 이별을 앞두고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여건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 출전했고, 플레이했다. 아쉽게도 한 끗 차이로 플레이오프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작년 시즌과 달리 올해는 부끄럽지 않은 4번 타자 노릇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쉽게도 안양 석수 구장에서 같이 야구하지는 못하겠지만, 만날 사람은 나중에 어떻게든 만나게 되더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할 뿐.


이 글을 쓰는 동안 이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새록새록 살아나는 지난 추억에 참 행복했다. 비록 지금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긴 하지만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는 것이 인연인만큼, 다시 만날 때의 내 모습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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