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 Kim Feb 21. 2021

다 같은 야구배트가 아니라니까 (1)

5분에 배우는 알루미늄 배트의 역사

2010년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니 벌써 만 10년 넘게 이 운동을 하고 있다. 이제는 연차나 실력이나 상당히 쌓였기에 어지간한 팀에 가면 초보 선수들을 지도해 주는 경우가 많다. 열정에 가득 차서 배트부터 집어 드는 선수들에게 필자가 늘 강조하는 첫마디는 "배트가 다 같은 배트가 아니다". 선수의 키, 몸무게, 근력, 타격 기술에 따라 같은 배트를 쓰더라도 퍼포먼스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팀 배트 아무거나 집어서 쓰며 그저 그런 성적을 내던 선수가 본인에게 맞는 배트를 찾은 후 성적이 향상된 사례도 많고. 물론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야 아무거나 써도 잘 치겠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필자도 처음에는 '그까짓 거'라고 생각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했지만, 배트에 대해 공부하고 수십 종류의 배트를 사용해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에게 잘 맞는 배트라는 게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에 크게 두 개의 글로 알루미늄 배트에 대해 설명하여 독자분들 (특히 현재 야구를 즐기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는 알루미늄 배트의 역사, 두 번째는 본인에게 맞는 배트 고르는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 주: 이 글에서 쓰인 '알루미늄 배트'는 금속 배트 및 컴퍼짓 (낚싯대 소재와 비슷한 합성 재료) 배트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원래 모든 배트는 나무배트였다. 취향에 따라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대나무 등 다양한 목재를 사용하긴 하지만 퍼포먼스에 아주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연습이나 시합에서 툭하면 부러지는 나무의 특성상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에 학생 및 아마추어에서는 내구도가 높은 합금 배트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때는 부러지지 않는 나무배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반발력', 즉 공을 맞추었을 때 얼마나 뻗어나가는지가 경쟁의 핵심이 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1990년대 후반에 출시된 Easton 사의 Z2K 배트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배트의 너무나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미 대학야구 투수·수비수들이 엄청나게 고생을 했고, 결국 미국 아마야구 협회에서 생산 업체들에 배트 반발력 규제 (BESR, Ball Exit Speed Ratio)를 부과하기 시작하였다. 


나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수십만 원 이상에 거래되는 Z2K 배트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타격 기술이 향상되고 소재공학이 발전함에 따라 BESR 규제만으로는 투수와 내야수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어졌다. 특히 합성 재료를 이용한 컴퍼짓 소재의 사용이 결정적인데, 컴퍼짓 소재는 합금보다 반발력이 월등했기에 여러 배트 회사에서는 경쟁적으로 컴퍼짓 배트를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11년에 반발력을 나무 배트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BBCOR (Bat-Ball Coefficient Of Restitution)이라는 새 규제가 부과되었다.






문제는, 저 규제들은 '미국'의 '대회'에서 사용하는 배트에 부과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한국의 사회인 야구에서는 (리그 운영진이 금지하지 않는 이상) 어떤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든 타자의 자유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그라운드 상태가 좋은 운동장이 많지 않아 불규칙 바운드에 의한 부상 위험이 늘 존재하며, 특히 반발력이 좋은 배트를 사용할 경우 자칫 투수나 내야수가 반응하기도 전에 불규칙 바운드에 가격 당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사회인 선수의 대다수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미로 야구를 시작한 사람들이며,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만 운동하는 식이다. 즉, 꾸준한 연습을 할 수 없기에 좋은 수비 실력을 갖출 수 없으며 이 강한 타구가 날아올 경우 대응이 어렵다. 실제로 Easton사에서 가공할 반발력으로 유명한 XL1 배트를 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경악 섞인 평가들이 야구 커뮤니티를 뒤덮었다. "허리가 빠져서 툭 건드린 공이 담장을 넘더라", "공이 라이너로 3루수 얼굴 옆을 지나가는데 움직이지도 못했다", "땅볼을 잡았는데 글러브를 뚫고 외야로 나갔다" 등등. 안타깝게도 이 배트의 타구에 맞아 큰 부상을 입은 사례들도 국내 야구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공유되곤 했다. 필자가 뛰던 안양리그에서도 투수 한 분이 XL1으로 친 라이너 타구에 얼굴을 직격당해 실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단무지'라는 애교 섞인 별명과는 달리 XL1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외국 배트 회사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외국 배트 회사들의 주 고객은 미국인들이며, 그들의 취향에 맞춘 배트들은 아무래도 평균적인 한국인들에게 살짝 버거울 수 있다. 그래서 한국 배트 회사들은 한국인들 입맛에 맞는 가벼운 배트들을 "한국형"이라는 미명 하에 지금까지도 계속 출시하고 있다. 미국처럼 규제도 없으니 반발력도 할 수 있는 한 강하게 만들어서 말이다. 타자 입장에서야 힘이 없어도 가볍게 맞춰서 멀리 보낼 수 있으니 좋겠지만, 투수나 내야수 입장에서는 '타이밍이 늦었다' 혹은 '저건 못 치겠지' 싶은 상황에서 급작스레 강한 타구가 날아오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자칫 이는 큰 부상 혹은 사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리그나 생활체육단체 등에서 자체적인 배트 규제 (i.e. 컴퍼짓 배트 금지, 금지 배트 리스트 제공)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릴 때 생활체육으로 야구를 선택하기 어려워 기본기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 한국 사회인 야구선수들에게 나무 배트나 BBCOR 규제 배트만 사용하라고 강제하기는 어렵다. 근력이나 기술은 좀 부족하더라도 은퇴 전에 꼭 홈런 한방 쳐보고 싶은 건 모든 사회인 선수들의 꿈이고, 이를 위해 배트의 도움을 최대한 받으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 없이 즐겁게 운동하는 것인 만큼, 리그와 배트 업체, 사용자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규제 도입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구로 맺은 첫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