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과 삶의 괴리
작년 9월 중순, 즐거운 마음으로 늦은 여름휴가를 준비하다가 이민변호사로부터 받은 한 통의 이메일. '영주권 서류 기한을 놓쳐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문구를 읽으며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지? 내가 뭘 잘못 읽은 건가? 10개월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시작한다고??'. 아무리 다시 읽어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이미 휴가 결재도 다 난 데다가 예약해 놓은 숙소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예정대로 휴가를 떠나긴 했지만, 내 신경이 쇠심줄이 아닌 다음에야 이 상황에서 마음 편히 망중한을 즐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이가 연신 "수영!!!"을 외쳤기에 낮 시간에는 바다에 가서 놀아주었지만, 그 와중에 변호사와 통화하고, 회사 HR과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했다. 아무리 방법을 강구해도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었고,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으며 진행한 모든 것이 날아갔다는 허탈함과 미국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낮아졌다는 절망감이 겹쳐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밤 시간에 바닷가를 걸으며 와이프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복잡한 마음으로 보내던 휴가 중의 어느 날 저녁,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지휘자 Y입니다. 잘 지내요? 상의할 일이 있는데 전화 부탁해요". 2019년 말에 성가대 오디션을 보면서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팬데믹으로 활동이 중지된 이후에 반년 넘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전화를 걸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팬데믹으로 성가대를 할 수 없기에 지금까지 몇몇 전공자들이 돌아가며 매 주일 예배마다 특송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달 뒤에 4인 혼성 중창을 계획하고 있는데 내가 테너 파트를 맡아 줄 수 있냐는 용건이었다. 평소의 마음 상태였더라도 섣불리 응낙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텐데, 하물며 영주권 이슈로 잔뜩 마음이 어려운 그때는 어땠겠는가? 더군다나 특송의 제목은 더 기가 막혔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7)
왜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결국 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내의 성격, 살짝 있었던 술기운, 내 마음 한 곳의 얄팍한 기복 신앙 (이런 거라도 하면 혹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중 어느 쪽의 지분이 더 높았는지는 아마도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내 주변의 신앙 좋은 분들을 보면 실직이나 투병 등의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감사하려고 노력하는데, 부끄럽게도 습자지 같은 내 믿음은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 'Why me?'가 제일 먼저 튀어나올 뿐이다. 그렇기에 악보를 전달받고 연습하면서도 '내가 왜 이걸 하겠다고 했나... 어차피 전공자들만 하는 무대에 한번 대타로 들어간 것이니 이번만 꾹 참고 하자'는 투덜거림으로 상한 마음을 달래갔다.
"그러므로 전신 갑주 입고 / 담대히 굳세게 서라 / 너희가 악한 날에 승리하고 서리라"
대학교 때부터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섰다. 얼치기지만 한 명의 배우로서 소신이 있다면, 무대 위에서는 나 자신이 아니라 극 중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배역이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든 미친 폭군이든 관계없이. 하지만 '넉넉히 이기느니라'를 무대 위에서 부르면서 처음으로 이를 고민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성도들에게 거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부담도, 내 삶에서 이런 선포가 흘러나온다는 가식도 없었다. 그저 이 힘들고 힘든 이민자의 삶에서 믿음의 갑주를 입고 굳세게 서기를, 세상으로부터 불어오는 폭풍을 버텨내기를 바라며 노래했을 뿐이다.
한 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벌써 7번이나 무대에 섰다. 어느새 얼굴이 알려졌는지, 모르는 교회 분이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처럼 대해서 당황스러운 때도 있다. 하지만 무대를 준비할 때나 노래할 때나 아직도 마음이 어렵다. 찬양의 가사는 감사와 기쁨, 앞으로의 희망을 말하지만 정작 내 현실과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계속 노래한다. 그렇게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