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사는 게 아니라 버티고만 있습니다
며칠 전,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있는 내 기록을 정주행했다. SNS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동안 쌓아온 기록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길고 짧은 글들, 가족/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들, 마음에 와 닿아 공유했던 뉴스 기사들… “내가 이때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었지?”, “이게 뭐라고 그리 힘들었을까”, “별거 아니지만 정말 행복했지” 등 장장 10년간의 추억이 다시 생생히 떠오르는 건 상당히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연말마다 SNS에 한해를 마감하는 소회를 올리곤 했다. 처음에는 싸이월드였고,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페이스북이 이를 대체했던 것 같다. 그 해 야구 기록의 결산 및 반성일 때도 있었고, 일 년간 일어난 일의 요약 및 내년에 대한 기대감일 때도 있었다. 올해는 이렇게 끝나지만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희망, 새로운 것을 찾아 배우고 나아질 것이라는 다짐. 아직 마흔도 안 된 주제에 ‘그땐 그랬지’라는 말을 하기엔 우습지만, 실제로 나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아메리칸 드림 따위를 꿈꾼 적도 없고, 첫 직장에 큰 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급하고 설익은 리크루팅이었고 협상에 사용할만한 다른 곳의 오퍼도 없었기에 회사의 오퍼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많이 낮았지만,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미국에 건너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아마 자폐를 가진 아들 태민이만 아니었어도 리크루팅을 하지도, 이 정도의 오퍼를 수락하지도 않았으리라. 하지만 인생에는 if가 없으니까...
텍사스에서 버지니아로 이주하면서 냉랭한 도시 분위기와 훨씬 비싼 물가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어차피 계속 여기에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인더스트리에서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배우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기에 그들을 의지하면서 점차 여러 가지를 배우고 회사에서의 입지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회사 임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영주권 절차를 빨리 시작하게 된 건 덤이다 (설령 회사를 옮기게 되더라도 그분의 도움은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년 봄에 H1B (취업비자) 추첨에서 떨어지면서 모든 것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반면 내가 추천하여 회사에 입사한 후배는 당첨되었다. 그때의 그 복잡한 심경이란...). 이공계 졸업자와는 달리 문과 졸업자는 취업비자 추첨 기회가 한 번밖에 없으며, 추첨에서 떨어지는 경우 짐을 싸서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에 브랜치가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해외에서 일하며 다음 해의 추첨을 기다릴 수도 있다지만, 나에게는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신분을 유지하는 험난한 선택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피로와 스트레스로 평생 없던 알레르기가 생기고, 한국에선 회식할 때 빼곤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밤에 혼자 들이켜는 날이 늘어갔다. '죽겠네. 이걸 계속 버틸 수 있을까?', '내년에도 H1B가 안되면 어떡하지?'. 그래도 바쁜 와중에 수업에 참여하고 과제를 하면서 ‘그래, 이 기회에 새로운 것도 배우고 학위도 하나 추가하는 거야’ 식으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보다 훨씬 오래, 열심히 일하는데도 계좌의 돈이 줄어들어 있을 때나 - 세금, 의료보험, 렌트, 대학원 학비, 아이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저축은 생각도 하기 어려웠고 때때로 있는 돈을 까먹기도 했다 - , 5살 때부터 철저히 지켜왔던 십일조의 액수를 줄이기로 결정했을 때는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을 견디기가 정말로 힘들었다.
금전적으로 힘들어도, 주경야독의 나날이 심신을 피폐하게 해도 영주권만 받으면 태민이를 미국에서 계속 키울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하지만 작년에 발생한 두 번의 영주권 이슈는 그렇잖아도 너덜너덜한 나의 멘털을 밑바닥부터 헤집어 놓았다. 한 번은 미국 노동청 (Department of Labor)으로부터, 다른 한 번은 이민 변호사로부터. 이 덕분에 남들은 빠르면 3개월 만에 넘어가는 단계를 1년 반 가까이 써서 지나가야 했다. 이렇게 차일피일 절차가 늘어지다가 두 번째 학위까지 종료되면 그때는 꼼짝없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국해야 하기에, 매일 밤 잠자리에서 되새기는 기도제목은 바로 영주권의 빠른 진행이 될 수밖에.
나는 기독교인이며,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하지만 믿음이 워낙 얄팍해서인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하나님,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을 저는 왜 이렇게 힘들게 가야 하나요’, ‘이렇게 아등바등 남의 땅에서 버티는 게 맞나?', ‘내가 어쩌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을 고집부려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등등 온갖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런 어려움을 친한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어떤 이에게 ‘좋은 곳 살면서 너무 돈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 혹은 ‘불경기에 더 힘든 사람도 있으니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냥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작은 집, 잔고장 없이 굴러가는 차, 생활과 태민이의 치료에 필요한 돈 외엔 별로 욕심을 부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뭘 바꾸겠다던가 어떤 성취를 이루겠다던가 하는 큰 목표도 없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아서 가족의 필요를 채우고 여유가 있으면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을 조금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다. 반면 지금은 필요 이하의 수입과 불확실한 신분이라는 두 가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니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으며, 일상에 안정이 없고 미래도 불확실하니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만약 아들 태민이가 하루하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진작에 짐을 싸서 귀국하지 않았을까.
미국 생활이 너무 힘들다면 그냥 돌아오렴
사는 게 힘들어서 가끔 신세한탄을 할 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이다. 들을 때마다 귀가 솔깃해진다. 이곳의 삶에 장점이 적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겪고 있는 마음고생과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까지 택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않다. 결코.
한국에 간다면? 일단 새 직장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UT MBA는 나름 Top 20에 들어가는 훌륭한 학교이지만, Top MBA 졸업자도 한국에 적지 않으니 아마 전 직장 연봉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유학을 나왔던 2017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오른 집값이라는 장벽이 있다. 얼마 안 되는 전세금마저도 유학시절 헐어 쓴 데다가 미국에 남으면서 전 직장에 학자금을 갚고 나니 지금 수중의 돈으로는 빌라 전세도 구하기 쉽지 않다. 아마 양가 부모님의 손을 빌리든지 아니면 직장에서 아주 먼 곳에서 월세살이를 시작해야 하겠지. 월세를 내면서 태민이 치료비까지 내면...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전세금은 모을 수 있을까? 보통 여기서 사고의 흐름을 정지시키는데, 생각해봐야 답도 없고 ‘내가 왜 그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따위의 자책이 몰려오며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한국에서 태민이가 마주할 어려움이다. 미국에서의 지난 4년간 태민이는 한 번도 장애가 있다고 무시당하거나 차별당한 적이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리 기저에 우월감에서 비롯된 경멸이 깔린다. 별생각 없이, 혹은 들으라는 듯이 내뱉는 칼날들. “저런 애를 왜 데리고 나와”, “무슨 죄가 있어서 자식이 저럴까”. 미국 정착에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와 와이프가 생각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도 한국에서 알게 된 자폐인 부모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들어서가 아니었던가. 강남에 있는 유명한 사립을 보내든, 일반 공립학교를 보내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이나 치료를 받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 사회의 관문인 학교에서부터 이럴진대 장애인이 한국에서 건강하게 -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 자라나서 홀로 선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며 가족 전체의 크나큰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 선택지조차 없을 수도 있다. 언제쯤 한숨을 푹 쉬며 “힘들긴 했지만 역시 좋은 선택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이전에는 더 나은 내일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왔지만, 지금은 그저 오늘보다 나쁘지 않은 내일이 온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