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직전의 Arizona 여행기

여행 중 밀려온 팬데믹

by Sol Kim

2020년 3월 초, 우리 가족은 Arizona주의 Phoenix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Phoenix는 미국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자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가장 큰 고객이 있는 곳이라, 적어도 2주에 한번씩은 고객 면담을 위해 방문해야 했다. 비행기를 타는 설렘과 호텔에서의 즐거운 경험도 잠시, 3시간에 달하는 시차와 왕복 10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의 반복은 몇달만에 필자의 몸과 정신을 좀먹었다. 가족이 Arizona에 와 있으면 굳이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음 => 필자의 항공권과 호텔이 있으니 와이프와 태민이의 항공권만 사면 되겠네? 라는 생각에 결국 계획에 없었던 봄방학맞이 가족 여행이 성사된 것이다.


Arizona는 미국 내에서 더위로는 적수가 없는 곳이다. 한겨울에도 영상 15도 미만으로 내려가는 날이 별로 없으며 한창 더운 7~8월에는 툭하면 영상 50도에 육박하는 불볕 더위를 자랑하는 건조한 기후이다. 그렇기에 피닉스의 겨울과 봄은 따뜻한 날씨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곳곳의 최고급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길수 있으며, Phoenix Open 등 유명한 프로 골프 대회도 겨울에 자주 개최된다. 또한 피닉스는 열성 야구팬들의 성지이기도 한데, 이는 MLB (Major League Baseball) 15개 팀들의 Spring Training이 바로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Chicago Cubs의 열혈 팬인 와이프는 이번 기회에 잔뜩 보고 오겠다며 신나서 두 경기나 보러갈 계획을 세워 놓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COVID-19는 문자 그대로 '남의 나라 얘기' 였다. 2월 중순의 사내 기도모임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심각한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기도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기도는 아예 하지 않았으니까. 아시아는 인구 밀도가 높아서 바이러스가 잘 퍼지는 것이며, 미국은 대중교통도 없고 인구 밀도도 낮으니 설령 바이러스가 유입되더라도 별일 없을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필자도 그저 COVID로 인해 아시아인에 대한 시선이 나빠질까 신경쓰이는 정도가 걱정의 전부였다.


주중에는 필자가 출근을 해야 했기에 와이프와 태민이 둘이서 피닉스 시내를 구경하러 돌아다니고, 퇴근 후에 다 같이 모여 맛있는 것을 먹거나 야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3월 11일 수요일, 업무를 마치고 아내와 태민이를 태우고 야구장 Sloan Park로 향했다. 이미 구장 근처 주차장은 먼저 찾아온 관람객들의 차로 만석이었고, 어쩔 수 없이 걸어서 15분 가량 떨어진 상가의 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다. 경기장에서 다르빗슈, 킴브렐 등 유명한 선수들도 보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좀 돈을 쓰긴 했어도 '언제 다시 애리조나까지 야구를 보러 오겠어?'라는 마음에 그저 즐거웠다. 아이가 졸려해서 부득이 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와이프와 필자는 '어차피 금요일에 또 오니까'하는 생각에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KakaoTalk_20210223_105949311.jpg
KakaoTalk_20210223_105949311_01.jpg
좌: 구장 내 전광판에서. 이름을 물어보고 전광판에 넣어주는 서비스가 인상적이었다 // 우: 구장 내에서 엄마와 아들이 한 컷
KakaoTalk_20210223_105949311_02.jpg
KakaoTalk_20210223_105949311_03.jpg
좌: Craig Kimbrel의 유명한 갈매기 자세 // 우: 맛있는 핫도그와 피자를 팔던 식당




다음날 아침, MLB는 COVID-19로 인한 Spring Training의 전면 중지를 발표했다.








동료들의 대화 주제는 더 이상 주말 계획이나 신변 잡기가 아닌 COVID-19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과 전염력이 강하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대화는 그저 불안감을 공유하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프로젝트가 막바지라 일은 바빴지만 그 상황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금요일 오후, 고객사는 모든 외부 직원의 출근 금지를 명령했고, 호텔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려 동시에 체크아웃하는 진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자와 회사 동료들 또한 회사의 지침에 따라 예정된 호텔 예약과 비행기 예약을 변경하여 Virginia로 돌아가야 했다. 필자는 가족들의 티켓도 얽혀 있어 부득이 호텔에서 주말을 보낼 수 밖에 없었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사람들 마주칠 일 없는 자연으로 가자는 마음에 피닉스에서 2시간 거리의 세도나 (Sedona)라는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10223_110139300_08.jpg Sedona의 Boyton Canyon Trail



세도나는 유명한 "기"의 도시이다. 세도나의 광대한 자연에서는 자주 에너지 소용돌이 (Energy Vortex)가 발생한다고 하며, 이로 인해 미국 전역과 해외에서 기를 받기 위한 수련자들이 모이는 도시이기도 하다. 소용돌이를 직접 보고 싶어서 유명한 vortex spot 중 한 곳인 Boyton Canyon Trail을 방문했지만 운이 좋지 못했는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기묘묘한 기암괴석과 이국적인 자연 환경, 시원한 날씨까지 문명을 떠나 자연 한가운데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고 돌아올 수 있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불확실한 신분과 미래에 마음이 힘들던 그 때, 광대한 자연을 느끼며 와이프와 이런 저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난다.


KakaoTalk_20210223_110139300_03.jpg
KakaoTalk_20210223_110139300_10.jpg
좌: Phoenix Botanical Garden에서 찍은 선인장 (saguaro) // 우: Sedona의 Chapel of the Holy Cross에서
KakaoTalk_20210223_110139300_07.jpg
KakaoTalk_20210223_110139300_13.jpg
좌: Sedona의 Boyton Canyon Trail // 우: Sedona Airport의 주차장에서 보이는 전경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앞자리에 앉은 미국 노부부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손잡이와 스크린 등 손이 닿는 모든 부분을 손소독제로 소독하는 것을 보고 '저럴 필요까지 있나'라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길어야 두세달 지나면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다시 출장을 다닐 것이라 생각했고.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만으로 1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쯤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여행이 고픈 지금, 그때의 사진들을 뒤적이며 아쉬움을 달랜다. 언젠간 다시 이 기막힌 풍광을 다시 눈에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