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를 돌아보며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Monte Cristo)'는 알렉산드르 뒤마 (Alexandre Dumas, 1802~1870)가 집필한 유명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Jekyll and Hyde)'의 유명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Frank Wildhorn)의 음악을 가미한 뮤지컬이다. 2010년 한국에서 초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그 이후로도 류정한, 임태경, 엄기준, 카이, 윤공주 등 유명한 배우들을 섭외하여 몇 년에 한 번씩 공연이 올라가곤 했다.
필자는 몇 년 전 한국은행 재직 시 팀원들과 문화행사로 관람한 기억이 있다. 아주 큰 기대를 가지고 보러 간 건 아니었는데 ‘원작을 잘 가공해 내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좋은 원작이 있는 공연의 경우 순수 창작극보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정극 (일반적인 연극)에 비해 뮤지컬은 신나는 노래와 화려한 춤, 급박한 무대 전환 등의 부가적인 요소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의 완성도까지 높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충실한 원작이 있는 뮤지컬은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또한, 많은 관객들이 줄거리의 큰 얼개를 어느 정도 알고 관람하기에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장점일 것이다. 반면 방대한 원작을 1~2시간의 짧은 대본으로 개작하고 무대에 올리기 적합하도록 다듬는 과정에서 원작과 전혀 다른 느낌의 뮤지컬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원작 소설에 실린 나폴레옹 전쟁 시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다양한 인물군, 철학, 신학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과감히 삭제하고 주인공 ‘장발장’의 일대기를 부각한 유명 뮤지컬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 좋은 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 뮤지컬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하고 싶다. 일단 공연 자체의 재미는 상당했다. 연출가는 음모에 빠져 사랑을 잃고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는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와 순정의 여주인공 메르세데스, 에드몬드의 친구이면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는 비열한 악당들, 에드몬드의 복수를 돕는 해적들 등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잘 살려냈다. 또한,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CG와 기계장치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창의적인 무대, 호흡이 잘 맞는 군무 등은 두 시간 반의 공연시간 내내 관객들이 공연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했다. 특히 무대 연출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데, 지하 감옥에서 간신히 살아 나와 무인도의 보물을 이용해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하여 파리 사교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에드몬드 단테스와 이미 결혼해버린 메르세데스가 파티장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치는 장면은 ‘저게 바로 연출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명장면이었다.
반면 극의 내용에 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5권에 달하는 방대한 원작을 극화하기 위해 상당 부분을 삭제 혹은 수정해야 하는 극작의 수고로움은 이해가 가지만, 원작의 테마인 ‘복수’의 비중이 줄어들고 주인공의 ‘사랑’을 너무 강조한 것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치밀한 계획으로 적들을 한 명 한 명 파멸에 빠뜨리는 원작과 달리 공연에서 모든 복수는 겨우 한 곡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복수를 다 이룬 후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복수는 무익하니 다 잊자!’라고 하는 장면, 메르세데스가 아들의 아버지가 바로 에드몬드라고 선언하는 해피엔딩을 보며 느낀 감정은 감동이 아닌 지독한 당황스러움이었다. 물론 사랑의 테마가 없는 공연은 앙꼬 없는 찐빵이며, 공연의 주요 관객이 로맨틱한 결론을 선호하는 20~30대의 여성이라고 해도 ‘모두 지옥에 빠뜨리라’라던 주인공의 20년어치 복수가 이리 가볍던가. 사랑이 이리 쉽던가.
물론 원작보다는 이런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며 그들에게 이 공연은 원작보다 나은 개작, ‘청출어람 (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공연일 것이다. 반면 원작을 선호하는 분들은 ‘귤화위지 (橘化爲枳, 귤이 탱자로 변함. 환경의 영향으로 좋지 못하게 변하는 것을 의미)’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