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본 뮤지컬 'Hamilton'

미국에서 제일 핫한 바로 그 작품

by Sol Kim

미국에서 가장 Hot한 뮤지컬은 무엇일까? 이 글을 쓰는 지금이야 COVID-19로 인해 미국이나 한국이나 공연예술쪽이 거의 다 고사상태라 큰 의미가 없겠지만, 이 질문을 팬데믹 이전인 2020년 초에 던졌다면 답은 무조건 'Hamilton' 이다. 동 뮤지컬은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amilton)'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며, 2015년 초에 무대에 올라간 이후 몇 년간 대부분의 공연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뉴욕 여행을 떠났던 2017년 겨울, '뉴욕 왔으니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봐야지!'라며 Hamilton의 티켓 가격을 검색하고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1층 앞쪽은 2천 달러, 배우 얼굴이 보이기나 할까 의심되는 3층 맨 뒤 좌석조차 3백 달러에 달하는 말도 안되는 티켓 가격. 와이프는 '당신이라도 보고 오라'고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백 달러가 큰 돈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뮤지컬을 맨 앞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돈으로 겨우 3층 맨 뒷자리밖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적지 않았다.


미국에서 몇년간 매진이 속출할 정도로 잘 나가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인물도 아니거니와 극의 전반적인 내용도 미국 건국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힘든 소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마 나도 우연히 유튜브에서 들은 사운드트랙에 꽂히지 않았으면 굳이 찾아가서 보지는 않았으리라. 더군다나 이 뮤지컬은 힙합 음악으로 가득하다. 배우들이 속사포같은 속도로 라임을 맞춰 가며 랩을 하고 대사를 주고받는데, 아무래도 이런 공연을 한국에 가져온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리크루팅에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진행되는 건 없고 '이렇게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하는 생각에 우울하던 2019년 초,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Hamilton 투어 팀이 Texas에 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티켓 값도 뉴욕보다는 싸겠지 싶어 Austin 공연이 언제인지 검색해 보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 귀국 예정일보다 한참 뒤인 2019년 6월이었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취직이 되면 모를까, 아무래도 못 보고 가겠네...'


하지만 감사히도 미국 취직이 되었고, 6월 말까지 Austin에 머무를 수 있게 되어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었다. 2019년 6월 15일, Austin의 Downtown에서 하루종일 CFA Level 3 시험을 치르고 몸과 마음이 모두 방전된 상태로 공연장인 University of Texas Performing Arts Center로 향했다. 벌써 화씨 100도 (섭씨 37도)에 달하는 날씨에 걷다 보니 온 몸은 땀투성이. 하지만 몇년간 별러왔던 공연을 드디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 속은 구름을 걷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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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as Performing Arts Center의 내부 전경






섬동네 촌구석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건국 혁명에 가담하면서 아내 일라이자를 만나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신뢰받는 심복이자 미국 최초의 재무장관이 된다. 하지만 연방 은행 설립을 근간으로 한 국가 경제의 운영 방안을 확정하기 위해 일에 몰두하고 정적들과 다투다 보니 집안을 점차 등한시하게 되고, 그 와중에 다른 여성과 불륜을 저지르다 그 스캔들이 퍼져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애런 버 (Aaron Burr)는 처음에는 해밀턴의 조언자이자 정치적 멘토였다. 하지만 해밀턴이 승승장구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로 인해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제퍼슨과 애런 버의 대통령 선거에서 해밀턴이 공개적으로 제퍼슨을 지지한 것을 기점으로 둘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결국 애런 버는 해밀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총을 손에 들고 마주 본 그 순간, 해밀턴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죽은 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독백하며 하늘로 총구를 향한다. 하지만 애런 버는 이미 방아쇠를 당긴 후였고, 자신이 역사에 '해밀턴의 살해자'로만 남게 될 것임을 슬퍼한다.


공연 시작 전의 무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사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데다 미국 역사에도 밝지 않은 필자가 극의 내용을 다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칼같은 군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유머와 랩은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특히 흑인과 라티노 계열의 배우가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동시에 "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 을 외치는 순간, 노래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래.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지. 백악관의 돈만 많은 멍청이와는 달리 당신들은 기억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괜시리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뮤지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은 Disney+에서 찾아보실 수 있으니 꼭 보시기를 권한다 (2021년 중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 한다). 1년 구독 비용이 해도 뮤지컬 티켓의 반도 안되는 가격이며, 한국어 자막까지 제공되기에 필자처럼 영어 가사 이해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실 필요도 없다. 만약 미국 건국 역사를 아시는 분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한번 공연장을 찾아서 Hamilton의 넘치는 에너지를 다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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