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보고
어느 사회에서건 비주류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서러운 일이다. 하물며 남의 나라, 그것도 한때 고국을 강점했던 나라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아픔은 형언하기도 어려울 것임이 분명하다. 학교에서 툭하면 일어나는 무시와 폭행,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일상에서도 차별과 백안시에 시달리는 삶. 아무리 큰 꿈과 뜻이 있어도 포기하고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특이하다. 이 작품은 1960년대를 살아가는 한 재일교포 가족의 일상을 그렸는데, 이 극의 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은 실제로 일본에서 성장하고 생활한 재일 한국인(在日, 자이니치)이다. 당연히 그도 자라나면서 비주류의 애환과 고통을 숱하게 겪었을 텐데도 그의 작품은 작가의 분노나 고통에 기인한 부정적인 장면 없이, 그저 비주류 가족의 일상을 세심한 눈썰미로 부드럽게 풀어나갈 뿐이다. 또한, 등장 인물들이 모두 자이니치이기에 극의 대사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모두 사용되며 (그 덕분에 한국어 및 일본어 자막이 동시에 제공되었다) 배우들도 한국 배우들과 일본 배우들이 절반씩 기용되었던 것도 특이한 모습이었다.
극의 제목은 자이니치 가족의 생활 터전인 고깃집의 상호 ‘야끼니꾸' (やきにく, 불에 구운 소고기 요리) + '드래곤' (가게 주인인 아버지 ‘용길’의 첫 글자인 龍)’에서 따 온 것이다. 극은 막내아들이 지붕에 서서 외치는 ‘나는 이 마을이 정말 싫었습니다’ 라는 대사로 시작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들 아픈 과거와 기억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아버지인 용길은 태평양전쟁에 징용되어 왼팔을 잃었으며 제주도 4·3사태 때는 아내를 잃었다. 그 후 두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와서 셋째 딸을 데리고 온 현재의 처와 결합했다.
네 자녀 중 유일하게 부부가 낳은 막내아들은 유명 사립학교에 입학했으나 심각한 이지메로 고통을 당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구타를 당하고 괴로워할 때마다 전학을 시키자고 주장하지만, 아버지는 ‘이지메도 이기지 못하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다’ 라고 피 끓는 목소리로 외친다. 결국, 아들은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지붕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아들의 죽음 이후, 용길이네 곱창집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일본인으로부터 구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유지에 무허가로 건립되었다'는 이유로 결국 철거되고 만다. 아버지 용길이 징용에서 잃은 왼팔의 텅 빈 옷소매를 부여잡고 “나한테 이것도 저것도 다 빼앗을 참이냐. 억지로 전쟁에 끌고 갔지 않았냐. 땅을 빼앗으려면 이 팔을 돌려줘, 내 팔을 돌려줘. 그리고 내 아들 돌려줘, 지금 당장 돌려줘!”라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극의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철거 이후 딸들은 각자의 길로 떠난다. 첫째 딸은 일본 생활에 적응 하지 못해 결혼 후 북한으로 떠나고, 둘째딸은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혼하며, 셋째딸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혼전임신을 하게 되고, 결국 그 남자의 이혼 후 결합한다. 둘만 남은 노부부 또한 서로 의지하며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떠나는 가운데 죽은 아들이 가족들을 배웅하면서 무대 가득히 뿌리는 벚꽃잎이 휘날리며 극이 마무리된다.
작가는 작품 속에 자신의 유년기 경험과 차별받고 여러 가지를 포기 했던 아픔을 녹여 넣었다. 예를 들어 용길 이네 가족이 비행장 근처의 공유지에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사는 설정은 실제로 그의 경험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기를 거쳐야만 했던 작가의 아픈 경험이 극의 전개와 설정 곳곳에 잘 녹아 있었기에 한국인 관객과 일본인 관객 모두 그의 잔잔하지만 아픈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리라.
누구나 주류에 편입되어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본인의 뜻과 능력에 상관없이 주변부로 밀려나 비주류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이에 절망하고 분노하며 살아갈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 아픔을 녹여내 삶의 동력으로 삼았기에 이렇게 멋진 연극이 탄생할 수 있었다. 힘들고 서러운 타지의 삶을 참아내고 버텨내다 보면 언젠가 필자도 이 경험을 녹여내 세상에 무언가 흔적을 남길 수 있으리라고, 오늘도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