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빠른데 느리다

by Okipokiyoki

이직을 했다. 결국 난 그곳에서 버텨내지 못했고, 다른 도전을 선택했다.

말이 좋아 도전이지 사실 도피나 다름없다.

적응에 실패했고, 열정은 식었으며, 경직된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무능했다. 아니 무능한 놈으로 만들어졌다.

경멸하고 무시하는 눈빛과 말투 속에 '나'는 점점 더 무너져 내렸다.


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느낌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건지 잘 몰랐다.(어쩌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걸지도..)

어느 순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의를 진행하던 중,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 그만해야겠다..' 불현듯 다짐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기억력 또한 감퇴했다.

5초 전에 한 이야기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는 건지...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었다. 자신감은 점점 잃었고, 말은 적어졌다.

기대도 없어졌고, 내일이 두려웠다.


처음 겪어보는 두려움이었다. 도저히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무언가 나를 옥죄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든 비판이 날아올 것만 같은 불안함에 나는 계속 죽어갔다.


한 친구를 불렀다.

"야 OO아, 나 아무래도 퇴사해야 될 것 같아"

"갑자기?? 왜 무슨 일인데??"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스트레스받고 있다고 생각 못했는데, 실은 엄청 받고 있었더라고,

붕어가 돼버렸어. 말한 걸 뒤돌아서면 잊어버려. 집중력은 또 어떻고 남의 말에 집중을 못해. 딴생각만 들어.

여기 계속 있으면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아"

"... 퇴사하자"

.

.

.

여러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내게 누군가는 응원을, 누군가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무작정 퇴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계획이 필요했다.


워킹홀리데이, 영어 공부, 취업 준비 등 다양한 계획을 세웠지만 어떤 것도 설득력 있진 않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다음을 준비해야 할까

내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

.

.

.

.

지옥 같은 직장에서도 나를 챙겨주는 선임분들이 계셨다.(사실 아직도 왜 잘 챙겨줬는지 잘 모르겠다.)

나를 유독 챙겨주셨던 대리님은 내게 끊임없이 이직을 권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지인 분과 관계가 있는 회사에서 신입을 찾고 있었고,

그 자리의 적임자로 나를 추천해주셨다.


사실 탐탁지 않았다. 중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의 이직이었고,

연봉은 여기보다 당연히 많이 받겠지만,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며, 그곳에서 하는 일도 무엇인지 모르겠고

회사의 비전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내 모습에 선임은 면접이나 한 번 보라며 등을 밀었다.


그리고 날짜를 잡아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간단하고 짧았다.

현재 회사에서 일하기 전에 쌓았던 스펙에 대한 질문, 지원동기, 이직의 이유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고

그럭저럭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회사가 정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여쭤보았다.

마지막으로 회사에 대한 질문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바로 출근할 수 있는 날짜를 조율하고, 잘 고민해보고 연락 달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붙을 줄은 몰랐다. 일이 커져버린 느낌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축하해주기도 하고, 존버를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넘어가 있었다.

새로운 도전, 또는 도피를 하고 싶었다.

여기서는 도저히 내가 성장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쓰레기, 병신 취급을 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고민 끝에 미뤄뒀던 퇴사와 함께 이직을 결정했다.

.

.

.

.

.

어느덧 이직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정말 바빴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다만, 행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전 직장에서 바닥을 찍었던 자존감은 조금씩 올라오고 있으며,

성과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옳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좋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때로는 채찍질을 받아도 모든 것이 내겐 자양분이 된다는 것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겨나고 있다.


내일이 궁금해졌다.



작가의 이전글세상 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