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좋은 어른을 만난 적이 없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인상깊게 남은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없는 걸로 친다.
이것은 곧 수용이랑 연결된다.
때때로 아이들이 실수 했을 때, 고집부리고 떼쓰며 어깃장을 놓을 때 등등.
아이들은 실수를 하고, 실패를 맛 보며 좌절하지만 그럴 때마다 옆에있는 주양육자의 응원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수용이 별 다른게 아니더라.
그저 객관적인 말 한마디, 그게 전부였다.
"아이고, 물을 흘렸어?여기 수건줄게. 닦아보자"
"오늘 친구랑 싸웠어? 많이 속상했겠구나. 어떻게 된 일이었어?"
"오늘따라 왜 짜증이 나셨을까? 피곤하니? 오늘 놀이터에서 재밌게 놀았나보네."
수용이란 별게 아니다.
나는'수용' 받아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의심이 많은 성인으로 성장했다.
수용받지 못했던 내가 내 자식들을 넓은 아량과 이해로 포옹하고 수용할 리 없었다.
물론 모성애는 있어서 어느 부모들처럼 자식을 사랑하고 헌신하지만 종종 나는 냉혈인처럼 아이들에게 차갑고, 감정적인 사람이 된다.
아이들은 당연히 서툴기 마련인데 나는 그걸 참을 수가 없었다.
욱해서 화를 내고 나면 미친듯이 죄책감이 밀려와서 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져서 침대에 앓아 누웠다.
내가 처음 심리 상담소를 찾은 이유는 첫째아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1년 2년, 아이에 대한 상담을 하고 놀이치료, 인지치료, 그리고 정신과 진료도 다녀 본 경험 끝에 깨달았다.
상담은 아이가 아닌 내가 받아야 하는구나.
그래서 2020년 4월 나는 다시 심리상담사를 찾아갔고, 이번에는 지구 핵까지 꽁꽁 숨겨두고 어디서도 하지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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