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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쏠라미 Apr 20. 2021

우는방법

울 줄 모르는게 아닙니다만

  지난 주, 첫 상담을 할 때 상담사가 말했다.


  속 시원하게 울어도 괜찮아요.


 울고 나면 마음이 훨씬 편해질 수 있다며, 자신이 어디가서 얘길 퍼트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믿고 편하게 얘기해도 된다고 재차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나는 상담사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눈치를 보고, 행여나 내가 이야기 하면서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눈치를 보고 있 것이었다.

  심지어 나와의 상담으로 저 상담사까지 우울해져서 힘에 부쳐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나의 마음을 다 읽고있었던 것같다.


  어쨌든 상담사가 편하고 솔직하게 리드해주는 분위기 덕분에 

 (역시나 계속해서 나는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만) 

혹시나 눈물이 나면 엉엉 울어버리자고 생각하고 울 준비를 한 사람처럼 마음을 먹었다.


울음의 전조 증상이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차오르며 머리에 띵-한 통증과 가슴 깊숙히 뜨거운게 느껴지기 시작 하는 것이다.

오죽 속앓이를 했으면 울어버리자고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왠걸 운전하는 차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게 2020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일이 있어서 차를 몰고 수원에 가는 길,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했다.

슬픈노래가 전혀 아니였다.

경쾌하고 부드러운, 봄에 듣기 참 좋은 살랑살랑한 느낌의 노래였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가빠졌다.


  정말이지 나는 감정을 참고 참고, 끝끝내~~~ 결국은 !

참으며 컸기 때문에 .

언제부턴가 눈물 흘리는 것 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그동안 수차례 마음 먹어온 '울어보자' 했던 그 순간이고, 

이 차안에 아무도 없으니 맘편히 울어보자고, 한 번 울고서 이 뜨거운 마음을 비워내 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평온해지는 마음으로 울컥하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려는 찰나에, 잊고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 눈물은 가식이야. 너는 이기적인 아이야."


  사춘기 시절 홀로 강방증을 앓으며 나 조차 스스로도 힘들고 괴로워하던 시기.

새아버지가 늘 나에게 한 말이였다.


  샤워 할 때 내가 수건을 두 장씩 쓰는게 못마땅했던 성인남자. 

숙제를 하거나 일기를 쓸 적에는 내 방 문을 닫곤했는데, 한 번만 더 방문을 닫으면 문짝을 부셔버리겠다며 협박하던 성인남자.

  이른 아침, 친구들 사이에 섞여 등교하고 있는 내 뒤통수에 운동화를 구겨 신었다고 "운동화 똑바로 안신으냐!!!!!!"며 소리를 질러서 수치심을 안겨주고 끝끝내 운동화 고쳐신는 내 모습을 보고서야 쌩하니 차를 몰고 가는 성인남자.

  새 아버지의 조카인 사촌 동생이 놀러 온 날, 그 아이의 잠자리를 챙겨주지 않는다며 느닷없이 내 뺨을 후려치던 성인남자.

  순종적이게 굴지 않았다며 테니스채를 들고 쫓아와서는 방문을 잠그고 패겠다고 협박하던 성인남자.

  왜 아빠라고 부르지 않느냐며 우리가족은 언제 행복해 질 수 있는거냐며 불행을 내 탓으로 돌리고 닥달하던 성인남자.


.....

어린 마음에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위로받지도 못했던 북받친 감정들은 순간적으로 나를 목놓아 울게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오래 울진 못했다.

운전을 하고있던 나는 네비를 보며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해야했기 때문에 좌회전 깜빡이를 넣었다가 우회전깜빡이를 넣었다가 빨간불엔 브레이크를, 초록불엔 규정속도에 맞게 주행을 해야했다.


젠장.


갑자기 왜 그렇게 감정이 북받쳤을까?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어느것 하나 내가 생각한대로 행동해 본 적 없었고, 느낀대로 말 해 본 적없이 컸다.

젊고 예쁠 나이에 나쁜 남편 만나서 고생만하고 이혼해서 어린 두 딸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그 어린 나는 뭐 하나 싫은 내색 없이 살았다.

그런 내가 도대체 뭐가 이기적이었다는 걸까?

그 아저씨 찾아가서 물어보고싶다. (새아버지는 다시 남이 되었기에)



니 눈물은 가식이야. 넌 이기적이야.


그 시절,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가슴에 얹혀서 20년 세월을 편히 울지도 못하고 살았을까.


난 원래 우리엄마가 인정한 '수도꼭지'였다. 

엄마가 이름에 성을 붙여서 부르기만해도 바짝 긴장해서 눈물이 그렁그렁 했던, 

'엄마 아직 혼내지도 않았는데 왜 우느냐'며 황당해 할 만큼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고.


새아버지였던 그 아저씨는 덩치만 어른이었지 성숙하지 못했고, 새로 꾸린 가정에서 자식들을 포용할만큼 인자한 어른도 아니었다. 그건 남자를 잘못 고른 엄마의 탓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탓도 아니다.

나는 어렸었고, 어른들의 선택에 묻혀가야만 하는 힘 없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큰 폭풍이 몰아치면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그냥 아이였다.


이제와서 찾아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억울해 하면 나만 손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절 숨죽여 울던 힘없는 나'와 성인이 된 나를 감정적으로 분리하는 일이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감정분리 이 말은 상담의 몇 회에 걸쳐 계속 들어야 했다. 


내가 내 마음을 직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게 아닐까 싶다. 

그 시절 나를, 내가 쓰다듬고 보듬었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부족하고 서툴음을 스스로 자책하고 채찍질 하며 애써 강해지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내 마음을 내가 외면했으니 내 마음이 뭔지 들여다보는게 서툴고 그 방법조차 모르고있었다.


 

상담사는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말로써 뱉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그때 그때 일상에서 떠오르는 기억이나 감정을 메모하고, 상담후 일지도 쓰곤 했는데 작년 8월에 핸드폰을 물속에 수장시키면서 메인보드가 나가고 수리불가 (수리비보다 기기변경이 더 싸다는) 진단을 받고 나의 기록들은 다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기억을 더듬으며 상담한 내용들을 적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아오.짜증나..





(2020.05.14 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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