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조카를 잠깐 봐줘야되서 가보겠다고 했더니 애기가 몇 개월이냐고 물어보셨다.
"8개월이요."
그 순간 옆에 있던 또 다른 분이 자기 집 창고에 손주들이 타던 보행기가 있어서 며칠 전에 밖에 내놨는데 안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우리 조카는 거의 매일 엄마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놀러오기 때문에 마침 우리집에도 보행기 하나 필요했다고 말씀드리자 흔쾌히 주시겠다며 "지금 가질러 가자!"고 하시기에 따라나섰다.
#분리수거장 앞.
보행기 앉는 부분의 천이 닳아서 너달너덜하고, 초콜렛인지 뭔지 끈적하고 시커먼것이 보행기 상판에 먼지와 함께 달라붙어 있었다.
새 것이었다면 파스텔톤의 연노랑색 아기자기 할 보행기가 전체적으로 꼬질꼬질 때가 타서 상한 머스타드 색으로 빛바래있었다.
아.
"아 생각보다 낡았네요. 안가져갈게요~죄송해요" 라던지
아니면 유머러스하게
"어머~ 가져가기엔 때가 너무 많이탔는데요??하하하하하하." 하고 자연스럽게 집으로 올 걸 그랬다.
"우리 손주들이 다~ 돌려 쓰다보니 오래되서 그렇지 닦으면 깨끗해."라는 이웃분의 말씀에
나는 "그럼요. 그럼요~괜찮아요" 하고 웃으면서
닳고 닳은 엉덩이 받침의 천 부분을 가리키며, "이 부분은 제가 만들어서 쓰면되요^^" 라고 했다.
아무도 묻지도않은 티엠아이.T.M.I!!!!!!!!
상한 머스타드 처럼 빛바랜.
중고 아닌 폐차 보행기를 이고지고 집까지 왔다.
'그래. 내가 취미로 미싱만 7년을 했는데.' 하며 보행기를 해체하고 물티슈와 알콜을 갖고와서 깨끗히 싹 닦아냈다. 그리고 분리한 천 부분의 시접을 다 뜯어서 패턴지에 본뜨고 내가 갖고있던 린넨을 꺼내와 제단을 시작했다.
그 무렵 동생이 우리 집엘 왔다.
최근에 우린 계속 중고 보행기를 찾고있던 터라 멀리 현관에서 거실쪽으로 보이는 보행기의 실루엣을 본 동생은 "어머나~ 이게모야~?"하고 방긋 웃으며 다가왓다가 이내 "이게 뭐냐고!!!어디서 이런 걸 주워왔어!!"라며 나를 노려보았고, 중고로 2만원주면 깨끗한 거 산다며 핀잔을 더하기 시작했다.
또 거절 못하고 이걸 들고왔냐며.
싫다고 말하는 연습을 좀 해보자며.
어머 너무 더럽잖아요!
저한테 버리신건가요?
이 말들을 자기 따라해보라며 어느새 나를 놀리고있었다
우리는 서로 깔깔깔.
배꼽빠져라 한참을 웃었는데 나는 이게 웃겨서 눈물이 난건지, 내 마음이 또 한숨을 쉰건지 알수없게 눈물이 났다.
사랑스런 손주들의 손때가 묻은 보행기를 나에게 넘겨주신 이웃분의 마음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보행기를 보는 순간 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거절해도 괜찮았다.
생각보다 많이 낡았네요. 라고 조심히 거절할걸 그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낡았다는 말에 기분 상하면 어떡하지? 라며 거절당할 그 분의 마음을 먼저 걱정했다.
상대가 기분 상하지않게 거절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생각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거절을 못했고 그 보행기는 우리집에서 발가벗겨졌다.
말 한마디에도 의미를 담아서 말하면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절한 상황에 센스있는 표현으로 말하기 위해 생각을 하다보면 뜸 들이게되고
결국 말문을 여는게 쉽지않다.
남의 마음이 어떻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나의 배려는 너무나도 지나쳐서 미처 나를 배려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