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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쏠라미 Jun 21. 2021

도서관장이 되다.

나도 나로 살기로했다.

나는 소심한 아이다. 

매사 신중하고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마음속으로 좌절하는 타입.

어릴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속터진다, 곰같다" 는 말을 많이하셨다.

나는 계속해서 속터지는 아이, 곰같은 아이로 성장했다.

그러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한명 없는 먼~ 학교로 배정받고 반장선거에 나갔다.

곰같은 나의 이미지는 친구들에게 편안함, 친근감으로 다가갔고 덜컥 반장이 되었다.

늘 속터진다는 소리만 듣던 나는 인정받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관악부 지도교사였던 담임선생님은 늘 바쁜 탓에 종례도 내가하고, 현장학습 나가서 인원체크해서 친구들을 해산시키는 것도 내 몫이었다. 

그 때에는 그게 참 재미있었다. 선생님께 인정받는 것도, 내 주변에 늘 친구들이 함께 있는것이 그렇게 행복했다.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 살고있는 아파트에 '도서관장'을 구한다는 공지문이 떴다.

여러번을 공지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마침 터진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은 한참을 휴관해야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도서관장님이 되어있었다.

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고, 남편 내조하며 살림만 한지 10년이 넘었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나를 휩싸며 나는 어느새 살도 찌고 성격은 더 소심해서, 별 일 아닌 일에 울컥 서운하고, 억울해서 땅굴을 파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싶었나보다. 

우리 아이들이 인정받고 싶어서 "엄마 이거봐바요!!" 하면서 자랑스럽게 색종이 꾸러미를 내밀 듯,

나 또한 인정받고싶은 욕구가 남아있었던 것 같다. 


결혼 후 10년을 넘게 전업주부로 사는 일은 '잘 해야 본전' 인 일이었다.

아이들을 아무리 잘 키워봐야 감기 한 번 걸리면 시댁갈 때조차 눈치가 보였고, 어쩌다 애가 감기가 걸렸냐며 걱정어린 질책을 하는 친정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도서관장이 되니 이웃 사람들이 관장님이라고 불러주고, 내가 나서서 도서관 문을 열고 다시 도서 대출을 시작하며 활기를 찾는 도서관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나의 이 십대 때.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당시, 사원증 목에 걸고 세상을 다 가진듯 한 만족감, 자기효능감, 당당함이 다시 느껴졌다. 정말 정말 좋았다.


우울의 수렁에 빠져 살던 나를 우물 밖으로 꺼내어 빛을 보게 해준 일이었다.

도서관장으로 봉사를 한 지 일년이 되었고, 나는 이제 다른 봉사자분께 이 자리를 넘겨드릴 준비를 하고있다.

나를 나로 살 수 있게 기억을 찾아 준 작은도서관에 고맙다.

힘들 때도 있었다. 

뭐하러 봉사하나. 애키우기도 벅차 죽겠는데. 

나 봉사하러 도서관에 온건데, 이런 나에게 왜 서비스를 요구하나? 싶은 무례한 주민들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 나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뭐라고 마무리를 해야할 지 모르겠네. 


육아 12년.

희생이 모성애고 엄마의 자질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나로 살기로했다.

그 계기가 되어준 도서관장 체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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