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끝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여행을 떠날 때도 차에 올라 타 아파트 입구를 막 벗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엄마 그럼 우리 언제 돌아오냐는 거였다.
구월의 첫 날이다. 벌써 며칠 전부터 나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면서 달력을 얼른 넘겨 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너무나도 달력을 넘기고 싶어지면 집안 곳곳에 놓인 달력들을 찾아다녔다. 그 앞에서 가만히 8월의 달력을 들여다 봤다. 이제 다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 장을 넘길 수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달력을 넘기는 순간이 왜 그렇게나 희열을 주는 건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달력을 넘기고 나면, 그래서 새 달이 시작되면 또 다시 달력을 넘기기 까지 삼십 일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왜 그런지 잘 설명할 순 없지만 난 새 달의 첫 날 달력을 넘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게 그냥 너무 좋다.
달력을 넘기는 순간을 기다리는 건 새 시작이 아닌 끝을 기다리는 거다.끝은 두려워하지 않고 안녕, 하고 우아하게 인사할 줄 아는 존재다. 그래서 언제나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축하와 위로로 기념될 자격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우아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 정말 속으로도 하나 무섭지 않았을까?
오늘 달력을 넘기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달력은 혹시 내 얼굴이 나타날 때마다 바들바들 떨진 않았을까? 저 다물어진 입을 가진 얼굴이 나를 끝장내려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리고 있다며 두려움에 떨진 않았을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