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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Apr 24. 2016

아무래도 내가 여름을 너무, 기다렸나보다.

어제 부풀던 꽃망울은 오늘 터져 만개한 꽃이 되고 내일이면 떨어져버리네

지난 해 봄은 이보다 좀 더 오랫동안 꽃이 피었던 것 같은데. 풍성해진 꽃송이를 한참 바라보고 사진에 담았던 것 같은데. 따뜻한 꽃잎이 날리는 세상이 꽤 한참 이어졌던 것만 같은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랗게 목련이, 산수유가, 매화가, 벚꽃이 가득가득 피어나다가 아 이제 꽃이 좀 떨어지나보다 하다가 오월이 익어가고 아카시아 향기가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지졌는데. 그제서야 겨우 유월이 저물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분명 내 기억 속에 지난 봄은 그랬는데 참말 이상하단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여름을 너무 기다렸나 보다. 내가 너무 기다려서 이렇게 급하게도 찾아왔나 보다. 꽃이 언제 폈었던지 꽃송이 다발이 얼마나 매달려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어제 꽃봉오리가 터질듯 부풀더니 오늘 꽃이 피어버렸네, 하고는 내일 꽃이 다 떨어졌었다. 그게 이번 봄의 기억이다. 봄의 기억이랄 게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봄이 너무 짧고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아니, 여름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거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여름을 기다렸나보다. 내가 너무 많이 기다려서 이렇게나 빨리 여름이 찾아왔나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은 더디 온다고들 얘기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 말은 맞지 않다. 


지난 해 10월 적어두었던 메모가 있다.


빨리 연말 되면 좋겠다.

일단 빨리 11월이 되면 좋겠다 - 추워지게.

그리고 12월이 오면 좋겠다 - 크리스마스가 있으니까.

그 담엔 1월이 되면 좋겠다 - 뭔갈 새로 시작하는 달은 항상 기운이 나니까.

그리곤 2월이 찾아오고 - 따뜻한 햇살이 조금씩 들어올거다.

3월이 되면 - 봄이 오는 소리에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겠다.

그러다보면 4월이 되고 - 꽃이 피고 딸기냄새가 흘러 나오고 잔디가 누렇게 변해가겠지.

그 다음은 5월이야 - 초록이 움트고 아까시 향기가 동동 떠다니는 오월. 오월은 아기들의 계절이고 내가 사랑하는 초여름의 밤이 있는 계절이지.

그러면 6월이 오고, 여름이 오고, 뜨거운 땀이 흐르고

난 이 곳을 걸어나갈거야.


아- 아름답다.


그렇다. 나는 7월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물론,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7월을 기다리면서, 난 매 달 할 일이 있었다. 7월을 만나기 위해.

소중한 누군가와의 약속을 앞두고 얼굴을 씻고,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하고, 가방을 드는 것과 같은 준비. 그 시간이 당신이 기다리는 동안 해야할 일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들이 얼른 찾아오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그것을 기다리기만 할 뿐, 그것을 맞을 준비는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찾아올 그것을 위한 준비뿐 아니라, 그것을 맞게됐을 때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그것을 맞기에 더욱 적절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시키다 보면 그것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있다. 기다림의 시간 그 자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이다. 이것을 알면 당신이 기다리는 그게 무엇이든, 당신의 눈 앞에 갑자기 닥쳐있곤 할 거다.

기다림의 대상 그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그것이 오기까지의 시간에 매달려라. 기다림의 대상은 결국에 당신에게 찾아올 것이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쉽게 당신을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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