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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Sep 22. 2015

그냥 좋아서 좋아하면 안되나?

"그냥 좋아서 좋아하면 안되나?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면 안되나?"

낭만서점에서 야마다 에이미의 '돈없어도 우아한 게 좋아'를 읽어주는 걸 들었다.

'만만하지 않으니까 더욱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 뿐이라고', 그리고  밀당은 싫어요, 라고.


8월의 마지막 저녁, 달리기 행사가 있었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달려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약속이 파토났고, '어쩌면 그래, 약간은 바라고도 있었잖아? 잘됐어' 하고 좋아했다. 적어도 내 머리는 좋아하려고 했다.


그 이틀 전쯤 낭만서점 팟캐스트에서 광화문 '신문각' 얘기가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번 주말 서울에 올라가면 거길 가보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였다. 늘 지나다니던 길이었고, 지나다니다가 그 허름한, 한문으로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와 검색도 해봤던 터였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맛집은 아니라는 말에 나중에 한 번 가보지 뭐. 가 볼 일이 있겠지 하고 지나치기만 했다. 아주 신이 나서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싶은 곳을 지나쳤지만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온 지 오래됐구나. 하면서 네이버 지도를 이용해 검색을 했는데, 내가 지나친 그 곳, 분명 청록빛이 도는 바탕에 흰색으로 한자 '신문각'이 써있는 오래되고 허름한 간판이 달려있는 건물이 있어야 할 그곳은 공사현장으로 슬레이트 벽이 둘러쳐져있었다. 바로 옆엔 이층짜리 중국집이 여봐란듯이 자기네 메뉴를 내붙여놓고 있었다. 그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야 있는 백숙집도 자기네는 영업중이라며, 가슴을 내밀고 걷는 오리마냥 뽐을 내고 있었다.

삐죽거리는 마음이 솟았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이렇게 다 둘러쳐놨어? 여기 가운데에 있었잖아, 거기까지 네 자리는 아니었잖아! 라며 증축공사를 안내하는 조감도 표지판에 대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따져묻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는 못 잡겠는데 발검음이 멈춰지지도 않아서 그냥 걸었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낭만서점에서 들었던 또 다른 중국집인 배재반점이라는 곳도 떠올랐지만 거길 가버리면 내가 신문각을 영 배신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냥 계속 걷다가 졍동국시집엘 들어갔다. 가게는 지하 일층에 있었고, 좁다란 계단을 내려가니 마루 자리에 한 커플이 앉아있었다.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를 잡고 앉아 칼국수를 먹을까 콩국수를 먹을까 고민하다 콩국수를 시켰다. 시키자마자 칼국수를 먹을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콩국수가 나와 한젓가락씩 입으로 가져가는 동안 옆에 있던 커플의 여자는 한차례 이미 실컷 울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며 목멘 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좀 태연하다 싶은 말투로 여자가 했던 어떤 행동을 나무라고있는 듯했다. 저러다 진짜 틀어지겠네. 싶었는데 어느새 내가 국수를 다 먹었을 때쯤엔 두 사람의 대화가 누그러져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일상적인 무언가를 묻고 있는듯했다. 분명 우아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좋은 건 좋은거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광경이었다.


좋을 때 왜 좋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눈에 띄었을 때 왜 발걸음을 옮겨놓지 못했을까?

우리는 늘 무언가를 지나치며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까지 묵혀두면 더 맛이 진해지나? 묵은지도 오래두면 시어지기만 할 뿐, 겉저리로 무친 배추나 보쌈으로 싸먹는 갓 담근 김치의 맛은 절대 내지 못한다. 그냥 두고 두어 싫지 않은 체를 하려고. '다음에'라고 한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스스로, 그리고 또 서로를 위로하려는 마음은 아닌걸까? 왜 굳이 기다리는걸까? 특별하고 대단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 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정말 그냥 좋아서 좋아하면 안되나?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면 안되나? 그 자리에서 생각하지 않고 뱉어버리면 안되나, 그런 말?


신문각을 잃어버렸다는 게 분했고, 그렇게 된 게 좋은 것에 대고 좋다고 말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들여놓지 못했던 나 때문이라는 게 분했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할 용기가 없기도 전에, 좋아하는 게 무언지 잘 모르는 건 아닌가도 싶다. 좋아하는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고 걸었던 길의 끝에서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커플을 마주쳤다. 그들과 다른, 국수 하나도 고르지 못하고 금세 후회하는 바보같은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분하다. 지금은 좀 달라졌길 하고 바라봤지만, 글쎄. 별로 변한 게 있는진 잘 모르겠다. 매 순간 내 행동은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어떤 감정을 느끼려는 건지, 무엇을 얻으려는 건지. 아니, 그냥 무엇보다도, "왜"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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