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면 됐다' 하는 순간
페이스북 이벤트를 통해 대한극장에서 열린 시사회를 보고왔다./2014.7.20
세기의 미술품 경매사. 평생에 걸쳐 미술작품과 사랑에 빠진 남자.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먈하지 않아도 그의 취향에 맞춰 생일을 챙겨주며, 어딜 가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나, 어느 순간에나 혼자다.
매 순간 완벽하고 흐트러짐이 없으며 누구에게나 존중받고 사랑받고 살아왔지만, 그는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을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 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아침 갑작스런 전화가 걸려온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고미술품을 처리하고 싶다며 그를 집으로 초대하지만, 번번이 그 전화의 주인공은 사고를 당했다며 나타나지 않는다. 몇 번씩이나 실랑이가 이어지지만, 전화기 속 불안한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고, 아무 이유도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그는 그녀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애쓰게 되고, 결국은 그녀의 마음을 열게 된다.
사랑을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직업에 소홀해지게 되고, 그의 명성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미술품과 명성으로 '빛나는' 삶이 아닌, 진정 가슴이 따뜻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그 동안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로지 그녀와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의 앞에 펼쳐져있던 동화책의 책장이 넘어가버린다. 삶은 만족하고 안심하는 순간 당신을 배반해버린다는 듯 소리치는 깡통로봇만이 빈 방에 남아있다.
아름다운 고미술품과 비밀로 가득한 여인.
두 가지는 겉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더욱 빛나고 더욱 아름다운 무엇이 있으리라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 버질 올드만씨가 이 두 가지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렸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 아니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말해줬던 프라하의 '달과 별 카페(정확하지 않음)'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상처받고 버림받은 남자 그것도, 삶에 지친 노인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 마지막 장면 속 그의 표정과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는 성공한 삶을 산 자의 표정과 모습이었다.
비록 그가 '사랑했다고 생각했던'여자는 그를 떠나갔지만, 그는 평생에 걸쳐 겪어보지 못했던 '사랑'에 대해 배웠고 이젠 그것이 무엇인지 머리와 마음으로 모두 알게 된 것이다. 그거면 됐다는 것.
정말 그녀가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요거트? 꽃? 뭘까? 그런 사소한 것을 떠올리는 행복과 소소한 삶.
그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그거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얻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떠나버린 텅 빈 방에서 깡통로봇이 그를 비웃으며 소리치던 장면보다 그가 홀로 카페에 앉아있던 마지막 장면이 훨씬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 동시에 들어서 영화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냄과 동시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줬다. 음악과 멋진 고미술품들, 주옥같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로 정말 '명품'인 영화를 만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