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leap Mar 17. 2020

01.

모든 경험은 유일하다.

이런 일이 흔하지도 않지만 드물지도 않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나에게 일어날 때 특별해진다. 모든 경험은 유일하다.


무엇이든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었다. 하지만 욕심과 기회는 많았다. 범인은 아니지만 천재도 아니었다. 동네마다 있는 수재 정도. 평균보다 조금 뛰어난 아이, 딱 그 정도. 어쩌면 그래서 욕심이 많아졌을지도 모르고, 욕심이 많아서 결국 기회도 많이 붙잡은지 모른다. 인과관계를 따져봐야 무엇하나 싶은 얘기일 뿐이지만.


솔직히 말해 이 시대에 평범하다는 말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평균은 중간값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아웃라이어가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점이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다르다. 그 세상에 다른 점들의 뒤통수만 가득하더라도. 이것이 진짜 아이러니다.


내 세상은 빛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깨진 도자기 속과 같았다.

안전하고 견고해 보였지만, 사방 깨진 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눈을 찔러댔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일이다. 네 살 때, 가족끼리 대공원에 놀러 갔다고 한다. 봄이었나 보다.  아니면 겨울이 찾아오는 가을의 끝자락이었던지. 그때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이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샛노란 바탕에 커다란 막대사탕 그림이 그려진 바지와 자켓을 세트로 입고 있다. 머리칼이 가는 편인 나는 사과머리를 하고 있다. 해가 쨍하게 비치자 햇님이 내 눈을 자꾸 찌른다고 찡얼댔다나.

마치 그런 느낌이다.

눈을 편안하게 뜰 수 없고, 아프다. 너무 많은 양의 빛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면 빛을 감각하고 처리하는 시신경은 고통을 느낀다. 단 하나의 빛 입자에도 반응하는 세포는 많은 양의 빛이 들어오면 그 에너지에 포화되어버린다.  지쳐 나가떨어진다는 소리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갑자기 옮겨갔을 때 눈앞이 하얗게 되거나 깜깜해지는 까닭이다.

길게는 30분까지 걸린다고 하는 빛에 대한 적응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금세 적응하고 나면 모든 것이 환하게 다 보인다. 어둠에서도 환하게 보인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그렇다.

견고한 도자기 안에 앉아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찔려 오던'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거기에 순식간에 적응했다. 그리고 이대로 곧, 서른 살이 된다.


가만히 앉아있었으면 어땠을까. 눈에 띈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한 번 두드려보라는 말을 들을 기회가 온다. 두드려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 그것을 수행할 용기가 주어진다. 어떤 결과가 일어나더라도 다른 사람이 책임져야한다는 부담이 없다는 것이 수재에게 주어지는 기회다. 그것은 곧 욕심으로 이어진다.


나는 함부로 벽을 두드렸다. 그리고 빛이 쏟아지면 잠깐 눈을 가렸다가, 혹은 오히려 눈을 더 부릅 떴다가 다시 또 벽을 두드렸다. 그 결과 온통 금이 갔고, 빛이 쏟아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