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leap Apr 18. 2020

나보다 하루가 짧은 사람은 재미 없다.

아침형도 저녁형인간도 아닌, 24시간형 인간.

나보다 하루가 짧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재미 없다.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비슷한 사람들이 삶을 함께 하게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잠든 이에게 무슨 대화를 건넬까. 꿈 같은 일이다.


지구가 스스로 자전하고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다. 그런데 하루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24시간의 하루 속에서도 모두의 시간은 유일하고 다르다. 대부분이 잠 자는 시간이 비슷하니 깨어서 무언가를 하는 하루의 길이도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하루 동안 내가 무엇을 몇 분동안 했는지를 확인해본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살펴보면 하루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우리는 지쳐서, 또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느라고 시간을 배로 사용하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내고 놓아보내게 된다.

물론 그래도 된다. 또 그래야 하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시계는 모두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는 것을 늘 인지하고 살아가는 일이다.


어렸을 때 여행을 가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 아침마다 오빠가 먼저 일어났다. 특히 바닷가에서 야영을 한 날이면 오빠는 혼자 먼저 일어나서 해변 가까이에서 놀다가 내가 일어나고 부모님이 깨어나실 즈음 텐트로 돌아왔다. 오빠는 정말, 거의 항상 먼저 일어났다. 내가 눈을 부시시 뜰 무렵 오빠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혼자서 뭐든 하고 놀고 있다가, 내가 일어나면 같이 놀았다. 아니, 사실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오빠를 내가 텐트 안에 앉아 내다봤다.


난 어려서 혼자 놀 줄 잘 몰랐다.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타고 싶어도 오빠가 같이 가주길 바랐고, 아무도 내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를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만큼 항상 사랑받았고, 또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으면서 컸다는 거겠지.

항상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는데 그것을 여실하게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가진 자는 둔감하게 마련인 건가. 다만 그만큼 주는 것에도 자연스럽다는 건 다행인 점이다. 주고 있다는 것에도 둔감하여 더 주고, 또 주고 계속해서 주고싶어한다. 왜 이제서야 이걸 깨닫게 되었냐하면, 그동안 많이 받고 또 많이 주고 싶어하며 살았던 나에게 내가 주고 있는 것만 눈에 보이는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늘 주는 것 이상으로만 받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부족함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왜 나만 풍족한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만 더 많은 시간을 가진 것 같고, 나만 더 힘을 내어 바쁜 중에도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만들어낸 시간의 틈새, 마음의 틈새에 모든 걸 담아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내가 애를 쓰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가진 것보다 상대방이 가진 시간이,  시간이라는 말이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부족해보인다는 생각을, 의심을, 불안을 갖게 됐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하고 또 밤에 늦게 자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늘 그래왔다. 체력이 받쳐주는가의 문제는 뒤로 하고, 그러고 싶어한다(그리고 많은 날에 그렇게 한다. 정말 몸이 힘들어서 자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분기에 한 번 정도는 있다.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면 늘어지게 잠을 자는 적이 잘 없다.)

나같은 사람에게도, 또 늦게 일어나고 무엇이든 여 유있게 해나가고 시간을 보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사람에게도, 하루 중에 심심하고 무료한 시간은 찾아온다. 괜히 누군가와 그냥 얘기나 해보고 싶은 그런 때.

아무리 보고싶고 얘기하면 즐거워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타이밍' 이 맞지 않으면 얄궂게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의 시계는 그 누구의 것도 같게 흘러가지 않아서 바라고 원하는 것과, 바라고 원'할 수 있는 것', 또 '그래도 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똑같은 순간, 하루의 같은 때를 살고 있음에도 지금 나와 상대방의 마음은, 육체적인 상태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 쉬운 말인데 이런 얄궂음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맞닥뜨리게 되면 곧바로 당황해버리고 만다. 당황해버리면,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해결할 생각 없이 고민할 생각 없이 넘어가버리게 된다.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이상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절대적으로 동일한 길이라는 건, 너무도 당연한 '과학적 사실'이니까.


시간을 피부로 느끼는 건 꽤 예민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받으려면, 시간에 대한 감각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비슷한 사람만이 오래, 쉽게, 진심으로, 편안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니까. 잠든 이에게서는 잠든 얼굴밖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어려운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