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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Apr 18. 2020

가족. 연대.

나는 스타워즈를 좋아해.

입장을 가질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는 상황이나 환경이 일생에 몇 번이나 주어질까?

어떤 관계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내 입장을 분명히 찾는다면 그 안에서 상처받거나 고민할 일은 확 줄어든다(차마 '사라진다'는 말을 쉽게는 못하겠다).

항상 외부에서, 또 내 안에서도 어떤 기대와 시선이 존재하고 그것만큼 눈에 잘 보이고 귀에 잘 들리는 게 없다.

그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 또 너무 크고 선명하게 보이고 들려서 도저히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에 압도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척을 하고 있게 된다. 진짜 내 모습이라는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내 '원래 모습'같은 건 원래 존재하지 않으며, 빈 백지 위에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것일 뿐인지도.

하지만, 아무래도 돌아서면 아닌 듯 하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확신은 없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점점 나를 잃어가고 혼란에 빠지거나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쉬운 일이라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맞서기 어려운 일이라서 그렇게 된다.


                                    스타워즈에서 그랬다.

                            그들은 우리가 혼자라고 느끼게,

                                       외롭다고 느끼게,

                  믿음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스스로 입장을 찾고 그 입장을 고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하지만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하면서도, 여태까지 그러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입장에 대해 스스로 잘 몰라서도, 피력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도 아니다.

나는 내 입장을 가지면 혼자가 될 수도, 외로워질 수도, 그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맘에 든다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데, 그 마음에 든다는 점이 사실은 내 입장이, 내 모습이 아닌 경우,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좋아해지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그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모두가 당당하고 자신있는 사람이 멋지고 좋다고들 말하지만, 온 세상에 뱉어진 그 말 중 정말 솔직한 진심은 몇 개나 될까.

다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고 싶어하고, 그런 사람만을 좋아한다. 그렇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뜻 내 입장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타워즈가 보여줬던 가족과 연대의 모습은 너무 갖고 싶어 마음이 찡한 것이었다.

온전히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또 내가 그 모습을 아직 찾지 못했을지언정 기다려주는 것. 내가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어디서든 외롭지 않게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연대이니까.


아니 에르노의 '사건'에 보면 프랑스 가톨릭이 가지는 의미가 '연대'라는 말이 잠깐 나온다. 연대. 어떤 일에 있어서도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또 어떤 사람에게라도 든든한 지지가 되어주는 것. 깊이 관여하거나 직접적으로 부딪히거나 눈에 보이는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그저 거기에 있어준다는 것. 내가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 아무 말 하지 않고 손을 내밀지는 않더라도, 거기에 그대로 서서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믿어도 좋다는 것. 그게 바로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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