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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Nov 18. 2015

A가 빠진 좌절.

보고싶다는 건. 갑자기 한 가운데서 문득 생각나는 것.

문득, 할머니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4년이 더 지나서야, 이제서야 할머니가 진심으로 보고싶어진다. 그 때는 분노와 치기, 거기서 생겨난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심보가 나를 휘덮고 있었던 게 더 맞는 것 같다. 이 사람 저 사람의 고여있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흘러모여 나의 마음에 고인 마음은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던 것 같다.

어떤 해들은 통째로 잘라내어졌고, 어떤 순간은 꺼먼 물감을 그어 눈에 보이지 않게 두었다. 그 가위질, 붓질을 한 손은 누구의 것인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 찾아내고 싶다는 생각같은 것도 전혀 없고. 그저 4년이 더 지난, 이제 5년이 다 되어가는 이 때에 와서야 그 사실을 본다.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그 때 그랬어요, 보고싶어요, 하는 말 말고. 할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어. 누가 이런 말을 했고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할머니에게 얘기를 하고 싶다.

보고싶다는 건 그런 거다. 특별한 이유나 무슨 새로운 일이 있어서, 그 사람의 대답이 듣고 싶어서가 아닌 것. 어제와 같았던 오늘, 일 년 전과 같았던 오늘 하루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그 사람이 잘 들어주는 사람이건,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건 그런 건 사실 전혀 상관 없다. 정말 남의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듣고 누가 말만 할라치면 말꼬리를 탁 끊고 자기 불만만 냅다 쏟아내는 그런 사람이어도, 그냥. 어제와 똑같은 오늘 점심 식당의 김치 맛을 얘기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이 보고싶은 거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생각보다 할머니는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던지도 모른다. 가끔 '벌로 들었다'며 웃음을 터뜨리던 우리 할머니는.
내가 지금 할머니에게 전활 걸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면,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할까. 내가 아는 우리 할머니는 들어주고 반응을 해주거나 대답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 할머니는 말을 해줄 사람이다. 할머니도 나를 보고싶어한다는 뜻이겠지. 아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난다면, 그럼, 우리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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