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lleap Nov 20. 2015

잘 차려입으시게,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가장 잘 해야 하는 말.

처음 웍세미나 발표할 때 랩에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던 건 나 혼자였다. 그날따라 박교수님이 하시던 게 얼른 끝나지 않아 계속 계셨는데, 내 덕분에 랩에 남아 하던 일을 마저 하고 가실 수 있었다며 계속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생각해보면 박교수님은 고맙다는 말씀을 정말 잘 하시는 분이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말을 잘 한다는 게 말을 조리있고 듣기좋게 하는 게 아니라 많이 하는 거라고도 한다. 하지만 조리있고 듣기좋은 게 아니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거다. 그렇다면 아무리 많이 말해도 결국 한 말은 많지 않게 된다. 말을 잘 한 게 아니란 얘기다. 이런 의미에서 박교수님은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잘 하시는 분이 맞았다.

난 마실 것에 대해 이유없는 두려움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어쩌면 단순한 강박증적 증상에 불과한 것들인데, 하나는 마실 것은 절대 누구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그렇게 드문 경우는 아니니까 넘어가도 좋겠다. 그치만 그 이유가 좀 우스운데, 바로 간염에 걸릴까봐서다. 또 하나는 캔음료에 정말 질색하는 것이다. 캔음료는 안에 뭔가 있을 것만 같다. 알루미늄 맛이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보이지 않는 안쪽 면을 어떻게 믿고 그 액체를 마실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안쪽 면에 대한 무한한 상상의 화폭이 펼쳐져서 도무지 즐겁게 마실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캔음료가 콜로이드처럼 건더기가 있는 것이라면 최악이다. 난 멈춰선 정지상태가 아니고서는 무엇을 마시지 못한다. 내 걸음걸이가 세상 모든 액체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거나 세상 모든 음료는 내 손에 쥐어지면 내 걸음걸이와 고유진동수를 맞추는 것이 틀림없다. 꼭 빨대를 꽂아서 delivery하는 것이 아니라면 백퍼센트다. 찰랑-찰랑- 액체는 춤을 추며 바닥에 자신의 예술혼을 쏟아낸다.
그리고 내가 먹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사탕이다. 어릴 적 어디선가 사탕은 입에서 녹는 순간 단당으로 분해되어 바로 살이 찌게 된다는 '괴담(?)'을 듣고는 먹지 않게 됐다. 또 사탕을 입에 넣기만 했다간 곧바로 상처가 나는 자기과시욕 강한 혀와 입천장 때문에도 먹지 않는다.

무튼 이런 내게 박교수님은 그날 자판기에서 식혜 캔음료를 하나 뽑아주셨다. 참 열심히 한다며, 솔이학생이 있어줘서 너무너무 고맙다며. 내일 발표 잘 하라는 말씀과 함께 서랍에 두셨던 사탕 한 팩도 잊지 않고 꺼내주셨다.

고맙다는 말은 그렇다. 아무 때나 뱉어내면 정말 안 되는 말이 고맙다는 말이다. 어줍잖은 상황에서 고맙다고 한다면 말 한 사람의 지적 수준이 의심된다. 적절하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교양을 짐작할 수 있다. 말, 단어 그 자체로 부족한 것이 바로 또 고맙다는 말이다. 적절히 옷을 입히고 얼굴에 로션도 좀 발라 보내지 않으면 되려 욕을 먹고 돌려 보내질 수 있는(여기서 그럴 수 있다는 말은 그래도 된다는 의미다) 녀석이 또 고맙다는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웬만하면 많이 해서 나쁠 게 없다. 미안하다는 말은 말투가 중요하지 얼마나 많이 하느냐는 별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예쁘게 차려입히고 상황에 어울리게 철들어 보이게끔 단장해줘야하는 녀석은 고맙다는 말이다. 이 녀석은 제 스스로도 숫기가 없어 고개를 잘 들지 못하니 더욱 보살펴야만 하는, 그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교수님이 그날 그 때 내게 건네신 내가 먹지 않는 자판기 캔음료-그것도 건더기가 반이라는 식혜-와 사탕 한 팩은 그날 그 때였기 때문에 잘 차려입은 '고마워'가 맞다. 분명 이 때도 쑥스러워 고개는 제대로 쳐들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때 녀석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이날 이 때까지 내가 봤던 녀석 중 가장, 분명한, 고마움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A가 빠진 좌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