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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Jun 11. 2020

미웠으면 미웠다.

지렁이를 밟은 자전거도 혐오했는데

만약, 차를 사게 된다면 어떤 걸 살까, 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주저하다 겨우 중고차였다. 작고 싼 중고차. 아무렇게나 타다가 언제든지 쉽게 처분해도 미련이 남지 않을 그런 차라면 언젠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건에 욕심이 별로 없고 또 아끼고 조심하며 물건을 쓰지 않는 편인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연기를 뿜으며 마구 달려대는 자동차라는 물건은 아무래도 내게 소유욕이 생기는 대상은 아니었다. 정말로 차를 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갖고 싶었던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 한 물건을 잘 구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물건을 구매하면 절대 조심해서 살살 다루지 않고, 아끼느라 쓰지 못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다. 물건을 쓸 때까지 쓰고 거칠게 다루면서 돈 아끼고(딱히 추가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망가지거나 고장이 나서 회생이 불가능할 때까지 사용하는, "끝까지 가는 타입"이며, 무엇이든 '소진'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학교 때문에도 직장 때문에도 사는 지역을 옮겼으 땐, 매번 즉시 중고나라를 뒤져 1-2주 안에 자전거를 장만했다. 하지만, 자동차는 아니었다. 정말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어떤 필요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걷고 뛰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해가 뜨거우면 뜨거우니까, 비가 쏟아지면 비가 오니까. 그렇게 바람을 맞고 땅을 딛고 무릎을 접었다 펴며 걷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자전거의 속도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었다.


물건 그 자체에 대한 필요도 없었고, 운전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없었다. 정말 그 어떤 로망도 없었다.

비온 뒤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다 지렁이를 밟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 자동차는 물론, 도로와 보도블럭, 자전거도로와 자전거까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비참한 생각에 젖는 사람인 나에게 차는 환경을 파괴하는 나쁘고 커다란 고철 덩어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덩치 큰 무엇 중 하나였으니까.


그러던 내가 바이러스가 무서워 그 고철덩어리를 돈 주고 소유하게 됐다.

미웠으면 미웠지 예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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