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했을까?
페이스북에서 아는 분이 오랫동안 타던 차를 처분하셨다는 소식을 봤다. 트럭이 승용차를 뒤에 연결해서 데려가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새 차로 구매한 것은 처음이었고 가족에게 추억도 애정도 많은 차라서 가족 모두가 아쉬워한다고 써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사진 속 자동차의 뒷모습이 조금 다르데 보였다. 가족들이 모두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차라니. 나는 그런 걸 경험해보지 못했다.
기억나지 않는 우리 가족의 첫 차는 검은색 프라이드였다. 2000년대에 나온 것과는 외모가 상당히 다르다. 각지고 안테나도 달려있다. 새 차였는데 1년 정도 겨우 타다가 내가 4살 무렵에 차를 처분했다고 한다. 첫 차였고 새 차였으니 아끼고 사랑하며 탈 법도 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큰 사고를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 차에 '아주 질려버렸고, 꼴도 보기 싫었다'고 하셨다.
가족 모두의 '추억'이 많은 차는 아마 아빠의 두 번째 차가 아닐까 한다. 역시 새 차였고 은색 아반떼였는데, 그런 세단으로 온갖 날씨에 온갖 지형을 주행했다. 말 그대로 그 차를 타고 보낸 시간과 거기서 생겨난 기억이 너무 많다. 사실 이 차를 타고 만든 많은 기억이 추억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이 차에 익숙해졌을 뿐 이 차를 사랑하진 않은 것 같아서다.
이렇게 오래, 많이 우리 가족을 태우고 다닌 이 차를 왜 치워버렸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가족 중 누구도 아쉬워하거나 이 차를 못 보내겠다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아빠에겐 세 번째 새로운 차가 생겼고, 이 은색 아반떼는 외갓집 마당으로 옮겨졌다. 방학마다 외갓집에 갈 때면 마당에 우리 차가 있는 것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어색함은 아쉬움이나 미안함, 그리움 같은, 그 차에 대한 애정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가족 누구도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어느 물건의 경우에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차를 살 때는 특히 더 내 눈과 손에 애정이 담기는 것으로 고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랑해야 서로 잘 보살피고 도와줄 거고, 그래야 오랫동안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면서 함께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사이라면 헤어질 때 얼마나 아쉽고 그리울까. 주위에서 타던 차를 처분할 때 아쉽고 속상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렇게 생각이 된다. 그리고 난 그런 게 좋아보였던 것 같다. 겪어본 적 없고 이해되진 않지만 무언가를 정말 사랑하게 되는 것. 그래서 헤어질 때 너무 아쉬워지는 것. 그래서 내가 차를 사게 된다면 그건 꼭 사랑에 빠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 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