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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ap Oct 13. 2022

눈 오던 날의 고속도로-1

앞유리에 흰색 크레파스가 칠해지는 경험 해보셨나요

눈이 슬슬 오는 것 같았다. 티브이를 켜니 일기예보에선 내내 눈이 올 거라고 했다. 아직은 눈발이 그렇게 거세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눈이 계속 올 거라면 빨리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끌고 주차장을 막 나서는데 눈송이가 하나 둘 앞유리에 떨어졌다. 와이퍼를 켰다.

고속도로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눈은 와이퍼가 한 번 지나가는 새에 앞유리를 가득 덮었다. 유리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의 결정이 다 보였다. 예뻤다. 처음에는.

눈이 계속 내리면서 어느 순간부터 앞유리가 뿌얘졌다. 추운 날이어서 실내 히터를 살짝 틀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가 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얼마나 춥다는 거겠어, 당연하지.' 생각하며 앞유리 성에 제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뿌연 게 가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실내가 너무 따뜻한가 싶었다. 실내 온도를 18도까지 낮춰봤다. 그래도 여전히 앞유리가 뿌얬다. 이상했다. ‘밖이 얼마나 추운 거야?‘ 생각하며 창문을 열었다. 유리가 뿌얘지는 건 김이 서리든 성에가 내리든 내부와 외부 온도 차이 때문이니 창문을 열면 괜찮을 거였다.

그러나 앞유리는 계속 하얗게 뿌얬다. 고속도로에서, 도무지 앞을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난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앞유리를 뚫어져라 보며 달렸다. 그 하얀 더러움 사이 틈으로 부옇게 보이는 시야만으로 계속 달려야 했다. 두려웠다. 워셔액도 뿌려봤지만 그 하얀 더러움은 꿈쩍하지 않았다. 정말 운전석 창으로 몸을 내밀어 손으로 바깥을 닦아내고 싶었다. 한 손으로 유리 안쪽을 문질러도 봤다. 내부에는 김이 서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앞유리 바깥쪽의 그 흰 더러움 역시 김서림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앞유리에 떨어진 눈이 녹지 않는 것 같았다. 실내 온도를 낮추고 창문을 열면 앞유리 온도는 차가워지기만 했을 것이다. ’ 그래, 너무 차가우니 눈이 얼어붙는 거야!‘ 이 생각이 나자 두근거리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히터를 더 틀면 순식간에 시야가 훤히 뚫릴 것이었다. 그러나 실내 온도를 22도 23도 24도, 그리고 25도까지 계속 높여도 앞유리를 뒤덮은 흰색 더러움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다시 불안감이 치솟았다.

실내 온도를 낮춰도, 높여도, 창문을 열어도 아무 차이가 없었다. 와이퍼가 한번 지날 때마다 앞유리는 깨끗해지기는 커녕 크레파스를 칠하는 것처럼 하얀 더러움이 계속 묻어났다. 정말 크레파스를 칠하는 것 같았다. 눈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는 더 이상 주행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휴게소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방금 다차로 하이패스를 통과하자마자 오른쪽 끝에 휴게소 입구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놓친 거였다. 대체 하이패스 이용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것인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멈출 수도 계속 갈 수도 없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보다 약간 앞선 위치에서 옆 차로를 달리던 덤프트럭이 내 차에 물을 끼얹었다. 질퍽한 도로를 달리며 그 덤프트럭의 바퀴가 시커먼 물을 튀긴 거였다. 그리고, 그 물이 닿자 앞유리의 크레파스 자국이 지워졌다. 구세주를 만난 것만 같았다. 나는 다음 휴게소가 나올 때까지 계속 그 덤프트럭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었던 건 그것뿐이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때까지 덤프트럭 꽁무니에 붙어 일부러 흙탕물을 맞으며 기뻐했다.

아직도 이해는 잘 안 간다. 도로의 물을 튀긴 것이니 그 물은 아마 차가웠을 것이다. 단순히 먼지와 오염물질이 섞인 찬 물이었을 텐데 그걸로 유리에 내내 엉겨 붙어있던 눈이 녹았다는 것이. 이유는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우연히 튄 흙탕물이 그날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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