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던 날의 주행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었다. 양동이로 들이붓는듯했다. 여느 때 같으면 혹시 비가 잦아들까 조금 기다렸을 텐데 예약한 시간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주차장 차단기 앞에서 미리 와이퍼를 켰다. 슥-닥-슥-닥 소리는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촥! 퍽 푸닥 퍽 푸닥 하는 거친 소리로 바뀌었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서자 원래 이렇게 와이퍼 소리가 큰가, 생각이 들어 주위의 다른 차를 훔쳐보게 됐다. 당연히 귀에는 내 차의 와이퍼 소리만 퍽! 퍽! 하고 들려왔다. 다른 차의 와이퍼도 바쁘다 바빠!라고 소리치는 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도시를 벗어나려면 고가를 타고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했다. 그 고가는 위험한 도로는 아니었다 - 물론 비가 이렇게 퍼붓지 않을 때만 본 사람의 얘기다. 비가 퍼붓자 도로 가장자리에 작은 개울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비가 쏟아부어도 통행량은 많았고(나 같은 사람도 차를 타고 나왔으니..?) 고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빠져야 했기에 개울이 흐르는 가장 끝 차선으로 주행해야 했다.
아직도 도로교통법과 운전에 통달하지 못한 나는 이 점이 궁금한데, 모든 고가도로에서는 전 구간 차선 변경이 불가능한 것일까? 고가도로의 경우 항상은 아니지만 대부분 안전을 위해 실선으로 차선이 구분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터널의 경우 항상 실선이며 터널 내에서 차선을 변경하면 안 된다). 그리고 실선 구간은 차선을 변경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많은 차선 변경이 일어난다. 흰 실선은 차로 변경을 ”제한“하는 것이지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서일까? 이것도 불법 차로 변경으로 적발 시 범칙금과 벌점이 부과된다. 다만 이것을 적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주위 보행자나 운전자가 신고할 수 있지만 안전신문고 앱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중략(미소). 그리고 실선을 넘어가는 주행에 대해서는 다른 사연에서 더 얘기하겠다. 진짜 큰 문제는 고가도로가 실선이냐가 아니었으니까.
고가에 막 진입해서 달리기 시작하는데 차 오른쪽 면에서 불길하게 드르륵-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정말로, 쇠로 된 가드레일이 또 쇠로 된 차 판을 긁는 소리였다. 헉! 하고 숨을 들이쉬면서도 나는 차를 멈출 수도 창을 내려 옆면이 긁혔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혹시 내가 너무 가드레일 쪽, 그러니까 개울이 있는 차선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주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정면을 똑바로 확인하는 것, 그리고 사이드미러로 바닥의 차선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정말 온 힘을 다해 놀라지 않고 주행에 집중했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정면으로 잘 주행하고 있는 듯했고 쏟아지는 비와 도로에 흘러넘치는 물로 도로 바닥은 보이지도 않았다. 사이드미러를 흘낏 보면 차가 물-그것도 흙탕물 속을 달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 순간 또다시 드르륵-득! 소리가 났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더라도 이미 벌어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더욱 안전하게 주행하는 것뿐이라고 소리 내어 말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고가도로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신을 바짝 차리는 일뿐이었다. 고가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로 드르륵-드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고가도로도 끝이 났다. 마음속에서 ‘괜찮아, 정신 차리자!’가 아니라 ‘끝났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로는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나는 정말 자포자기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목적지까지 갔다.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가 걸렸고 비는 점점 더 잦아들더니 도착할 때쯤엔 그쳐버렸다. 차를 세우고 내리기가 두려웠다. 옆면 두 개의 문짝에 걸쳐 기다란, 어쩌면 넓적한 긁힌 자국이 보일 것이었다. 보기만 해도 드르륵 드르르륵 드륵! 하고 소리가 날 듯한 그 자국. 보지 않아도 눈앞에 선명했다. 차에서 내려 차 오른쪽으로 다가갔다. 실눈을 뜨고 차판을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어?
정말 깨끗했다. 긁힌 자국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소리는 흙탕물이 개울처럼 콸콸 흐르던 가드레일과 차선 사이 도랑을 차가 달리면서 물살이 거세게 바퀴와 차체를 치던 소리였다. 아휴, 웃음이 실실 나왔다. 차가 말짱해서 다행이었고, 장마철, 폭우가 쏟아질 때 주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건 자랑스럽기까지도 했다.
운전은 계절을 하나 보낼 때마다 엄청 는다고 했다. 계절마다 극단적인 날씨가 한 번씩은 있다. 악천후라고 부르는 그런 날씨에 운전을 안 하면(사실 집에 얌전히 있으면, 이라 말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안전할 거다. 하지만 그런 날씨에 운전을 하는 것이 금지된 것도, 죽을 만큼 위험한 것도 아니다.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때에 주의해야 하는지만 알면 된다. 이런 걸 다 알려주는 운전면허 연습장 같은 건 없지만. 소소하지만 나에겐 굉장히 큰 경험이었고 이런 경험을 많이 나눠서 여자도, 아니 여자들이 특히 더 안심하고 자신감 있게, 언제든 편하게 운전하고 다니면 좋겠다.